[딜사이트 이광호 기자] 골프 브랜드 ‘볼빅’이 현 주가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가격으로 100억원의 외부 자금을 끌어왔다. 최대주주인 TS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한 벤처캐피탈(VC)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이 기준주가보다 91% 높은 가격에 투자하면서 외형상 볼빅의 기업가치에 베팅한 모양새다. 그러나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환가액이 30% 낮아지고 조기상환 때는 연복리 7%의 수익률을 지급하는 조건이 붙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턱밑까지 차오른 유동성 위기에 따른 급전 조달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볼빅은 지난 2일 총 1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전환상환우선주(RCPS)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신주 발행가액은 3205원으로 공시상 기준주가인 1677원 대비 91.1% 할증됐다. 현 전환가액을 기준으로 보통주로 전환하면 312만123주가 발행되며, 이는 전환 후 전체 주식의 17.53%에 해당한다.
배정 대상자는 최대주주인 TS인베스트먼트(30억원)를 비롯해 우리벤처파트너스·에버베스트파트너스(50억원), 보광인베스트먼트(10억원), 에임인베스트먼트·하랑기술투자(10억원) 등이다. 이번 RCPS의 존속 기간은 발행일로부터 10년이다. 투자자들은 내년부터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연복리 7%의 수익률을 가산한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받는다.
눈에 띄는 대목은 발행가격이다. 볼빅은 공시상 기준주가 1677원보다 91.1% 높은 3205원으로 발행가격을 정했다. 표면적으로는 최대주주와 FI들이 현 주가보다 볼빅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발행가격만으로 이번 투자조건이 볼빅에 일방적으로 유리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FI가 실적과 상환 측면에서 별도의 안전장치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특히 볼빅의 연결 영업이익이 올해 50억원, 내년 70억원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전환가액을 기존 3205원의 70% 수준인 2244원까지 낮추는 실적 연동 리픽싱 조항이 포함됐다.
볼빅이 이 같은 조건으로 자금을 끌어온 배경에는 빠듯해진 유동성 사정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볼빅의 매출액은 386억원으로 전년 465억원 대비 17.0% 감소했다. 매출 감소에도 영업이익은 7800만원을 기록해 전년 16억원대 영업손실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흑자 전환에는 강도 높은 비용 절감이 영향을 미쳤다. 볼빅의 판매비와관리비는 2024년 169억원에서 지난해 132억원으로 감소했다. 특히 판촉비는 50.6%, 지급수수료는 31.0%, 광고선전비는 28.2% 각각 줄었다. 외형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마케팅과 판매 관련 비용을 줄이며 가까스로 영업흑자를 만들어낸 셈이다.
영업흑자 전환에서도 순손실은 이어졌다. 이자비용 19억원과 잡손실 18억원 등 총 40억원 규모의 영업외비용이 발생하면서 당기순손실은 2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64.7% 늘어난 규모다. 자본총계는 전년 대비 13.5% 감소한 126억원으로 줄어든 반면 부채총계는 15.5% 증가한 416억원으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247.7%에서 330.9%로 상승했다.
단기 유동성 지표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지난해 말 유동부채는 304억원으로 유동자산 262억원을 42억원 웃돌았다. 유동비율은 약 86.2%에 그친다. 단기차입금 219억원과 유동성전환사채 25억원 등 단기간 내 대응해야 할 채무도 적지 않다. 여기에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전년 13억원 순유입에서 지난해 29억원 순유출로 돌아섰고, 현금성자산도 같은 기간 25억원에서 13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보유 현금만으로 단기성 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동성 여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번 100억원은 재무구조 방어와 성장 투자를 동시에 위한 자금 수혈 성격이 짙다.
볼빅은 우선 조달금액 가운데 40억원을 바이탈과 지산파트너스로부터 빌린 연 10% 금리의 단기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투입한다. 연 환산 기준 약 4억원의 이자비용을 줄이는 효과다. RCPS 역시 조기상환 시 연복리 7%의 수익률을 부담해야 하지만, 당장 연 10%의 이자를 부담하는 단기차입금 40억원을 상환한다는 점에서 단기 이자비용과 유동성 부담을 덜 수 있다.
나머지 60억원은 내년까지 운영자금으로 분할 집행된다. 일부는 해외사업 정상화에, 일부는 신규 성장동력 확보에 투입된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7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볼빅 USA(미국 법인)의 구조조정과 판매채널 재편에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05% 증가한 파크골프(PARKPOP) 전용 생산설비도 증설할 예정이다.
신규 조달자금 전액이 성장 투자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고금리 차입금 상환과 자본잠식에 빠진 해외법인 정상화에도 상당 부분 쓰이는 셈이다.
볼빅 관계자는 “최근 파크골프 전용 라인업의 매출이 올라오고 있어 이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며 “미국 법인을 포함한 해외 사업 유통 채널을 전면 재편해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가 자금 조달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으나, 상황에 따라 검토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자금 수혈 이후 볼빅이 FI에 약속한 수준까지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여부다. 이번 RCPS에는 ‘실적 연동 리픽싱’ 약정이 포함돼 있어서다. 볼빅의 연결 영업이익은 2024년 마이너스(-) 16억원대에서 지난해 7800만원으로 흑자 전환했지만, 리픽싱을 피하려면 올해 50억원, 내년 70억원이라는 영업이익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지난해 1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영업이익을 올해 수십억원대로 끌어올려야 하는 만큼 실적 개선의 문턱이 높다.
실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전환가액이 2244원까지 내려가면 잠재 전환물량은 현재 약 312만주에서 최대 445만6327주 수준으로 43%가량 늘어난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 희석과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투자자가 조기상환을 선택하면 볼빅은 연복리 7%의 수익률까지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환물량 증가에 따른 지분 희석 부담이 커지고, 투자자가 조기상환권까지 행사할 경우 현금 유출 부담도 가중될 수 있는 구조다.
IB 업계 관계자는 “실적 목표 달성에 실패해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될 경우 대규모 지분 희석과 연복리 7%의 조기상환청구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맞닥뜨릴 수 있다”며 “코스닥 이전 상장 추진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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