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KB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 자회사 KB뱅크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스틱(STIC) 펀드와 맺은 지분 콜옵션(매수청구권)을 최종 행사하지 않았다. 유상증자 당시와 비교해 현지 주가가 반토막 난 상황에서 시장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지분을 추가로 사들일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다.
금융권에서는 국민은행이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당장 수천억원의 자금을 집행하지 않고 KB뱅크의 실적 정상화와 인도네시아 현지 금융지주사 체제 개편을 지켜볼 시간을 확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KB뱅크의 적자가 손익분기점 수준까지 줄어든 만큼 추가 지분 취득을 서두르기보다 정상화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2023년 4월 KB뱅크 유상증자 과정에서 맺었던 3조1900억루피아(당시 한화 약 2800억원, 현재 약 2500억원) 규모의 지분 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초 국민은행은 스틱이 지분을 취득한 후 2년6개월이 경과한 시점부터 6개월간 스틱이 보유한 KB뱅크 주식을 사들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유상증자가 완료된 시점이 2023년 5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콜옵션 행사기간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올해 5월 말까지였다. 국민은행이 이 기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해당 권리는 소멸했다.
대신 콜옵션 행사기간이 끝난 직후부터 스틱의 풋옵션(매도청구권) 행사기간이 시작됐다. 양사 계약에 따르면 스틱은 지분 취득 후 3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1년간 KB뱅크 주식을 국민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틱은 내년 5월 말까지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은행이 지분 매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던 구간이 끝나고, 스틱이 매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구간으로 넘어간 셈이다.
국민은행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KB뱅크의 주가 하락이 꼽힌다. 2023년 유상증자 대금이 지급된 5월31일 기준 KB뱅크의 종가는 102루피아였지만 올해 5월 말에는 55루피아로 46.1% 하락했다.
양사 계약상 콜옵션 행사가격은 계약 당시 합의한 수익률 또는 행사시점 이전 일정기간의 참조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유상증자 당시보다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콜옵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을 웃돌 경우 국민은행으로서는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야 한다. 특히 시장가격과 행사가격 간 괴리가 큰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지분을 매입할 경우 투자 판단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콜옵션과 풋옵션의 행사가격 산정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콜옵션은 계약 당시 합의한 수익률 또는 행사시점 이전 일정기간의 참조 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풋옵션은 유상증자 참여 당시 원화 기준 투자금액에 기준금리와 일정 스프레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풋옵션 기간 진입이 국민은행의 지분 취득 비용을 낮춰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틱이 풋옵션을 행사하면 국민은행은 계약에서 정한 가격으로 지분을 인수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콜옵션 미행사를 통해 확보한 것은 가격 측면의 이점보다는 당장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KB뱅크의 경영 정상화 추이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KB뱅크의 실적은 풋옵션 행사기간에 진입한 올해 들어 손익분기점에 근접하고 있다. KB뱅크는 올해 상반기 순손실을 41억원으로 통제하며 전년 동기(809억원) 대비 적자 규모를 768억원(약 95%) 줄이는 데 성공했다. 국민은행의 경영권 인수 이후 첫 연간 흑자 전환 가능성도 다시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민은행이 주도해온 고강도 체질 개선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점포망 효율화가 꼽힌다. 2023년 말 173개에 달했던 현지 영업점을 지난해 말 151개로 12.7% 줄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145개까지 추가로 축소했다.
KB뱅크 정상화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국민은행은 2018년 인도네시아 소매금융 전문은행인 부코핀은행(현 KB뱅크)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2대 주주(지분율 22%) 지위를 차지했다. 이후 2020년 주주배정과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각각 참여해 지분율을 67%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대출 영업 축소와 현지 경기 침체 등이 겹치면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KB뱅크는 2020년 43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이듬해 순손실이 2725억원으로 6배 넘게 불어났다.
이에 KB뱅크는 자본건전성 확보를 위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으며 최대주주인 국민은행은 약 7000억원을 투입해 지분율 하락을 방어했다. KB뱅크의 성장 가능성과 KB금융이라는 전략적 투자자(SI)에 높은 점수를 준 스틱 역시 해당 유상증자에 3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했다. 동시에 투자금 회수의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국민은행과 콜옵션·풋옵션 계약을 맺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당시 국민은행은 KB뱅크의 경영 정상화를 전제로 향후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2025년까지 흑자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2023년 상반기에는 반기 기준 흑자를 기록하며 정상화 기대감을 키웠지만 연간으로는 261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24년에는 순손실이 3606억원으로 확대됐고 흑자 전환 원년으로 제시했던 지난해에도 102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고리를 끊지 못했다.
이처럼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동안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국민은행이 콜옵션을 행사할 유인은 더욱 약해졌다. 반대로 올해 들어 손실 규모가 빠르게 줄면서 국민은행으로서는 KB뱅크의 정상화 여부를 확인한 뒤 후속 자본전략을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KB금융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현지 금융지주사 체제 구축도 변수다. KB금융은 현지 금융 계열사를 중간지주회사 아래 묶어 통합 관리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수천억원 규모의 KB뱅크 지분을 서둘러 추가 취득하기보다 현지 지배구조 재편과 KB뱅크의 실적 정상화 추이를 함께 지켜볼 유인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KB뱅크의 실적과 주가가 정상궤도에 올라선 뒤 지분을 취득할 경우 대규모 자금 투입에 대한 시장의 동의를 얻기도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당장의 현금 유출을 막는 동시에 그룹 차원의 인도네시아 사업 재편에 대응할 자금 운용의 여유도 확보한 셈이다.
다만 콜옵션이 소멸했다고 국민은행의 추가 자금 부담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콜옵션은 국민은행이 행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였던 반면 현재 행사기간에 들어간 풋옵션은 스틱이 보유한 권리다. 스틱이 내년 5월 말까지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국민은행은 계약 조건에 따라 지분을 인수해야 할 수 있다. 결국 국민은행은 당장의 수천억원대 자금 집행을 피하며 시간을 확보했지만 향후 지분 매입 가능성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시장 가치가 콜옵션 행사 기준가격에 미치지 못해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이라며 “굳이 확정적인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장 지분을 매입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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