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 등 글로벌 방산 강자를 제치고 미 육군 기동전술화포(MTC) 사업의 시제품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국산 완성 무기체계가 미국 방산시장에 진입한 첫 사례다.
다만 이번 계약은 시제품 규모여서, 대량 양산까지는 최대 4년의 실전 검증을 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미군이 실제 4년간 시제품으로 사용하면서 성능·신뢰성·정비성 등 검증을 통과해야 하고, 현지 생산 기반 구축도 마련해야 해 실제 양산까지는 아직 넘어야할 산들이 많다.
딜사이트 취재를 종합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차륜형 자주포 K9MH는 미 육군이 노후 견인포 M777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하는 MTC 사업의 시제품 6문(옵션 포함 최대 18문)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궤도형 K9으로 유럽·중동을 공략해 온 한화가 차륜형 K9MH로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까지 제품군을 넓혔다.
한화 측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국이 한국에 포병 전력을 지원한 지 76년 만에 한국 방산기업이 거꾸로 미국의 포병 전력 재건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 방산업체를 중심으로 무기를 개발·조달해 온 시장이다. 이와 관련해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K9MH의 미 육군 진출은 개별 수주를 넘어 한국 방산업체가 미국 시장에서 직접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번 기회의 배경에는 미 육군의 화력 현대화 방향 전환이 있다. 미 육군은 2020년대 초부터 사거리를 늘린 궤도형 자주포를 자체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이후 병력의 신속 전개 수요가 커지면서 기동성이 높은 차륜형 자주포를 확보하는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 미 육군이 직접 개발보다 이미 검증된 체계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완성도 높은 자주포를 보유한 해외 업체들에 문이 열린 것이다. K9MH가 겨냥한 MTC 사업은 기동부대의 화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으로, 기존 궤도형 자주포를 대체하는 사업과는 별개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선정이 단독 수의계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 라인메탈,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이스라엘 엘빗, 프랑스계 KNDS, 영국 BAE 등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함께 뛰어든 경쟁을 뚫은 결과다. 회사 측은 선정 배경으로 완성도와 공급 속도를 꼽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완성도 있는 자주포를 빨리 공급할 수 있느냐였다"며 "방위사업청, 국방기술신흥연구소 등 정부 기관의 개조개발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업체 대비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K9MH는 미 육군의 20여개 요구성능 전 항목을 충족했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최고성능 기준을 넘었다.
이 같은 평가의 바탕에는 궤도형 K9이 쌓아온 실적이 있다. K9은 폴란드, 인도, 호주, 이집트 등에 수출됐고, 폴란드와 인도에서는 현지 생산까지 진행하며 단순 완제품 수출을 넘어 각국 방산 공급망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차륜형 K9MH는 이 검증된 플랫폼에 자동화 포탑 등을 더한 모델로, 한화가 궤도형에 이어 차륜형까지 라인업을 확장하는 발판이 됐다.
다만 이번 계약은 양산이 아닌 시제품 단계다. 미 육군은 앞으로 약 4년간 이 시제품으로 성능·신뢰성·정비성을 직접 검증하고, 운용 환경에 맞춰 세부 사양을 조정하는 커스터마이징을 거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특별한 결함이나 결격 사유가 없으면 최종 양산 계약을 체결하는 절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양산 전환을 낙관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 4년 검증이 대량 납품의 전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지 생산 기반 구축도 과제로 남아 있다. 한화디펜스USA는 올해 4월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며 현지화에 시동을 걸었다. 임대 기간이 검증 기간보다 짧다는 지적에 대해 회사 측은 "임대 기간은 리스크 최소화 작업과는 관계가 없으며, 상황에 따라 연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산 규모에 대해서는 "미 정부가 규모를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가 이를 예상해 대외 공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결국 이번 계약의 실질적 가치는 4년 뒤 양산 전환에 달렸다. 시제품 단계의 계약 규모 자체는 크지 않은 만큼, 당장의 실적 기여보다 향후 대량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 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결국 최종 수주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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