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현진 기자] 코스피와 코스닥을 비롯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지난 두 달 간 극심하게 이어지면서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 가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증시 상승 과정에서 수수료와 이자수익 등을 바탕으로 역대급 실적을 거둔 증권사들이 정작 자체 자금을 활용한 주식 투자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사들이 국내 주식투자를 멀리하고 수수료 수익에만 혈안이 돼 있으면서 증시 안정의 책임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증시 급락에 대응하기 위한 증안펀드 가동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자금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언제든 증안펀드를 가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정책적 신호를 시장에 보내 투자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 증안펀드 가동 준비만으로 시장에 심리안정 효과
증안펀드는 주식시장의 급격한 하락으로 시장 기능이 위축될 경우 금융회사와 증권 유관기관 등이 공동으로 자금을 출자해 주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시장 안정 장치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증시가 급락했을 당시 금융당국은 은행·증권·보험사 및 증권 유관기관 등이 참여하는 10조7000억원 규모의 증안펀드 조성을 추진했다.
당시 증안펀드는 실제 대규모 자금 집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시장 안정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줬다는 점에서 투자심리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이유로 최근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실제 자금 집행 여부와 별개로 증안펀드 가동 방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증안펀드 가동을 요구하기에 앞서 금융투자업계의 자체적인 시장 안정 노력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국내 증시 상승과 거래대금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자금 가운데 주식에 투입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에서다.
◆ 코스피 9000 가는 동안…증권사들 수수료만 챙겨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은 지난해 국내 증시 호황에 힘입어 수수료와 자기매매 부문을 중심으로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증권사 수수료수익은 16조6159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수탁수수료만 8조6021억원에 달했다. 자기매매손익 역시 12조745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실적 개선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 61곳의 당기순이익은 4조3271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주식 거래대금 증가 등의 영향으로 수탁수수료는 4조30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5.8% 증가했다. 자기매매손익도 4조1026억원을 기록하는 등 증시 활황의 수혜가 증권사 실적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반면 증권사들이 직접 자기자본을 투입해 국내 증시 상승에 베팅한 규모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증권사들 자기매매손익을 곧바로 국내주식 직접투자 성과로 해석하기도 어렵다. 자기매매에는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과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의 운용 손익이 모두 포함돼서다.
실제 지난해 증권사들의 자기매매손익은 12조7456억원으로 전년비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코스피가 지난해에만 76% 급등한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은 미미했던 셈이다. 세부적으로는 ETF를 포함한 주식·펀드 관련 손익이 1조원 가량 늘었지만 파생상품에서 8조6715억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채권 관련 손익도 19.9%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자기매매손익 역시 4조1026억원으로 전년비 30.8% 증가했다. 하지만 이를 증권사들의 국내주식 직접투자가 크게 늘어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주식·펀드뿐 아니라 채권과 파생상품 등 트레이딩 부문의 손익을 합산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의 자금 운용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뚜렷하다.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을 단순히 상장주식에 장기 투자하기보다는 채권과 파생상품, 신용공여, 기업금융(IB) 자산 등으로 분산해 운용하고 있다. 증시가 급등하는 과정에서도 고객의 주식 거래를 중개해 수수료를 벌거나 ETF·파생상품 등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상승장의 과실을 누렸을 뿐, 자기자본을 대규모로 국내 상장주식에 투입하는 이른바 'PI(Principal Investment)'는 핵심 수익원과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코스피 급등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는 증권사였지만, 정작 증권사들 스스로가 자기 돈을 걸고 한국 주식의 상승 가능성에 베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객들이 주식을 사고팔수록 수수료를 벌고 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트레이딩 기회가 늘어나는 '장사의 호황'을 누렸지만, 증권사 자신의 돈으로 지수 상승을 따라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총자산 1000조 돌파했지만 베팅하지 않았다
실제 전체 증권사 총자산은 2025년 말 약 944조원에서 2026년 3월 말 1098조4000억원까지 증가했다. 1년 사이에 자산이 100조원 이상 늘고 전체 숫자는 역사적인 1000조원을 돌파했지만 증권사들이 증시 상승에 기여한 역할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거래소 수급만 놓고 보면 증권사들은 이번 상승장에서 주식을 가장 많이 사들인 투자주체 가운데 하나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서 증권사 등의 거래가 반영되는 '금융투자(증권사)'의 순매수 규모는 2024년 약 7조원에서 지난해 약 30조원으로 네 배 이상 급증했다. 코스닥에서도 금융투자의 순매수는 같은 기간 약 2조원에서 3조원으로 늘었다.
올들어 매수세는 더 강해졌다. 금융투자는 올해 들어 지난 3월 말까지 코스피에서 약 17조원, 코스닥에서 약 14조원을 순매수했다. 2025년 9월 이후로 기간을 넓히면 코스피 금융투자 순매수 규모만 38조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를 증권사들이 자기자본을 걸고 국내 증시 상승에 대규모로 베팅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거래소가 집계하는 금융투자 매매에는 증권사의 순수한 자기계정 방향성 투자뿐 아니라 ETF 유동성공급자(LP)와 지정참가회사(AP) 활동, 현·선물 차익거래, ELS 등 파생상품 헤지를 위한 현물 거래가 함께 포함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금융투자의 주식 순매수가 급증한 배경에는 ETF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자리한다. 개인과 연금 자금이 지수형 ETF를 매수하면 AP·LP 역할을 하는 증권사가 ETF 신규 설정에 필요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초자산을 시장에서 매입한다. 이 거래 역시 통계상 증권사의 '금융투자 순매수'로 잡힌다.
실제 증권사들의 자기매매 실적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증권사 전체 자기매매손익은 12조7456억원에 달했지만 자기매매에는 주식뿐 아니라 채권과 펀드, 파생상품 등의 운용손익이 모두 포함된다. 코스피 급등에 올라타 국내 주식을 사들여 거둔 투자수익과는 다른 개념이다.
결국 이번 상승장에서 증권사들은 주식을 사지 않은 것이 아니다. 거래소 통계상 수십조원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다만 상당 부분은 한국 기업의 주가 상승을 내다본 장기 자기자본 투자라기보다 ETF 설정과 시장조성, 파생상품 헤지 등에 따라 발생한 '중개·트레이딩성 매수'였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들은 코스피 상승에 방향성 베팅을 하기보다 시장이 커지고 거래가 늘어날수록 돈을 버는 구조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의 주식 거래에서는 수탁수수료를 벌었고 ETF 시장이 커지자 유동성 공급과 헤지 거래가 늘었으며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트레이딩 기회도 확대됐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는 동안 증권사들이 놓친 것은 상승장 자체라기보다 '한국 기업에 자기자본을 장기간 투자해 함께 성장하는 투자자'의 역할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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