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삼성전자·LG전자 TV의 경쟁 제품은 중국 제품이 아니라, 자사의 냉장고, 청소기, 스마트폰입니다.”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는 12일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열린 'Display Next 2027'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하며 “다른 가전 제품들은 편의성 등 기능을 강조하며 가치를 높이고 있는 반면 TV는 화질에만 치중할 뿐 기능 자체가 크게 변한 게 없다”고 했다.
냉장고와 스마트폰 등은 새로운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며 제품 가치를 높여온 반면 TV는 화질 개선에 치중하면서 소비자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만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스마트폰은 MP3플레이어와 카메라, 게임기, 캠코더 등을 하나의 기기에 흡수한 데 이어 건강관리와 멤버십, 지갑 등 소프트웨어 기능까지 추가했다. 최근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등 집 안의 가전을 제어하는 허브 역할까지 맡으면서 과거 TV가 차지했던 '가전의 중심' 자리까지 넘겨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TV 가격도 빠르게 낮아졌다. 이 대표에 따르면 55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의 가격은 2007년 3500달러에서 2025년 5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가 프리미엄 TV로 분류하는 가격 기준 역시 기존 2000달러 이상에서 1000달러 이상으로 낮아지는 등 TV의 전반적인 가격대가 내려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TV 가격 하락은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가격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트업체가 TV에서 충분한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패널 구매가격을 낮추려는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 대표는 “세트에서 돈을 못 버니까 디스플레이 업체에 끊임없이 하방 압력이 가해진다”며 “한국처럼 인건비가 높은 국가에서 대형 LCD TV용 패널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진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최근엔 중국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TV 자체의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판매량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하드웨어 판매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대신 광고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TV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사업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면서다. 이에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중국 업체들의 공세 속에서도 TV 판매 물량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 플랫폼 사업에서 수익을 확대하려면 결국 판매량을 늘려 이용자 기반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TV 업체들은 하드웨어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만큼 TV를 하나 팔고 끝나는 하드웨어 사업이 아니라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며 “무조건 물량을 지켜야 한다. 브랜드가 더 중요하냐, 물량이 중요하냐고 하면 사실 물량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생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용 패널의 수익성이 낮아지는 반면 게이밍 등 고사양 수요를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모니터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능력의 일부가 모니터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비리서치에 따르면 OLED 모니터 출하량은 2028년 1010만대로 TV용 OLED(960만대)를 넘어선 후 2030년 1670만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TV용 OLED는 2028년 960만대를 기록한 후 2030년 860만대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TV에서 모니터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TV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올해 들어서 시장 상황이 급변했다. OLED TV 시장이 줄 것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일부 TV 업체들도 이같이 전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결국 개별 제품의 성능 경쟁을 넘어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기능과 사업 영역을 얼마나 빠르게 확장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진단이다. 기술 경쟁력 자체가 높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과 사용 경험을 제시하지 못하면 시장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일본 업체들은 기술력과 성능을 우선시하고 기능을 등한시했다”며 “그 자리를 차지한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은 스마트폰에 이어 자동차까지 나아가고 있다. 회사가 다양한 기능을 통해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빠르게 바뀌는 시장에서는 빠른 기능 변화와 다양성을 갖고 시장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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