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시장 내 수급 긴장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AI 서버 주요 고객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한 장기 공급계약 체결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동우 삼성전기 IR담당 부사장은 30일 열린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공지능(AI) 서버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시장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생성형 AI 확산에 따라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어난 가운데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서버에 들어가는 MLCC 수요가 공급 능력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고객사들이 장기계약을 통해 물량 선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기는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와 반도체 업체를 장기 고객으로 묶어두고 있다. 이동우 부사장은 “탑티어 하이퍼스케일러 및 주요 반도체 업체 등 10여개 고객과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며 “추가로 주요 고객들의 장기 공급계약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I 서버용 MLCC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최첨단 제품의 수율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예년보다 설비투자 규모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MLCC는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반도체 등 각 부품에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전자제품 내부의 전류 흐름을 조절하는 부품이다. 일반 서버에도 다수의 MLCC가 들어가지만 AI 서버는 GPU와 고성능 프로세서가 대거 탑재돼 필요한 MLCC의 수량과 용량이 크게 늘어난다. 특히 최신 AI 서버에는 일반 서버보다 10배 이상의 MLCC가 사용된다. GPU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소비와 발열도 증가하기 때문에 작은 크기에도 많은 전기를 저장하고 고온 환경에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이 요구된다.
수요가 늘더라도 공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삼성전기의 협상력을 높이는 배경이다. AI 서버용 MLCC는 내부에 얇은 유전체와 전극을 수백층 이상 균일하게 쌓아야 하며 용량을 높일수록 층을 더 얇고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생산설비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 인증과 수율 안정화까지 거쳐야 해 후발 업체가 곧바로 공급에 참여하기 어렵다. AI 서버용 고부가 MLCC 시장이 삼성전기와 일본 무라타 등 선두 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유다.
이동우 부사장은 “100마이크로패럿 이상의 초고용량품과 125도 고온품 등 최첨단 제품은 성능과 신뢰성 측면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어 대응 가능한 업체가 당사를 포함해 소수에 불과하다”며 “고부가 제품 비중 증가에 따라 블렌디드 평균판매가격(ASP)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제품 가격 자체가 오르지 않더라도 일반 정보기술(IT)용보다 단가와 수익성이 높은 AI 서버·산업·전장용 제품 판매가 늘면 전체 MLCC ASP가 높아지는 구조다. 삼성전기의 2분기 실적에서도 이러한 제품 구성 변화가 나타났다. 삼성전기는 연결 기준 매출 3조4572억원, 영업이익 440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4.2%, 영업이익은 106.7% 증가했다.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훨씬 높았던 것은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MLCC, AI 가속기용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 등 고부가 제품 판매가 확대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삼성전기는 장기계약으로 판매 물량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격에도 공급 부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 선전법인을 통해 공급하는 MLCC 전 품목의 가격을 8월 출하분부터 인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무라타와 다이요유덴 등 경쟁 업체에서도 가격 인상 움직임이 나타난 만큼 AI 서버 수요에서 시작된 공급 부족이 범용 MLCC 시장의 가격 정상화로 확산되는 흐름으로 읽힌다.
삼성전기는 “수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가격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고객사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먼저 장기계약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삼성전기가 과거처럼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가격 경쟁에 나설 유인은 줄어든 셈이다. 공급 물량과 계약 기간, 제품 사양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하며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도 커졌다.
또한 AI 서버용 MLCC는 고객 인증과 수율 확보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생산설비를 늘린다고 즉시 공급량이 확대되는 구조는 아니다. 삼성전기가 수율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우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제품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태곤 전략마케팅실 부사장은 “3분기에도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자율주행 고도화에 따른 관련 부품 수요 강세가 이어지면서 MLCC와 FC-BGA의 타이트한 수급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AI 서버와 네트워크, ADAS용 초고용량·고온·고압 등 고부가 MLCC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와 반도체 업체들과 전략적인 장기 공급 계약 협의를 지속하고 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격에도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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