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국내 게임업계의 인수합병(M&A) 시장이 '생존을 위한 매각'과 '성장을 위한 인수'로 양극화되고 있다. 실적 부진과 재무 부담을 겪는 게임사들이 경영권이나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사이, 자금력을 갖춘 대형 게임사들은 해외 개발사와 플랫폼,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며 글로벌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같은 M&A라도 한쪽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한 거래이고, 다른 한쪽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성격이 뚜렷하게 갈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재무여력의 차이가 향후 신작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존 위한 매각…같은 거래라도 회사에 남는 돈 다르다
3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카카오게임즈는 LAAA인베스트먼트로 최대주주 변경을 마쳤고, 위메이드는 네오펄스로의 경영권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펄어비스도 해외 자회사 CCP게임즈를 매각하며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겉으로는 모두 자산을 처분하는 거래지만, 회사에 실제 유입되는 자금 규모와 활용 방식은 크게 다르다.
카카오게임즈는 라인야후가 출자한 특수목적법인(SPC) LAAA인베스트먼트를 새로운 최대주주로 맞았다. 거래는 기존 최대주주 카카오의 구주 일부 매각과 카카오게임즈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전환사채(CB) 발행을 결합한 구조다.
카카오게임즈는 2400억원 규모 유상증자와 600억원 규모 CB 발행을 통해 총 3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확보했다. 최대주주가 바뀌는 동시에 회사도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구조다. 확보한 자금은 재무구조 개선과 게임 등 신규 사업 투자에 활용될 예정이다.
반면 위메이드 거래는 창업주 박관호 의장이 보유한 구주를 매각하는 방식이다. 박 의장은 위메이드 지분 39.33%를 네오펄스에 약 9200억원을 받고 넘기기로 했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네오펄스는 기존 보유분을 합쳐 지분 40.25%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른다.
주목할 점은 이번 거래가 기존 주주의 지분을 넘기는 구주 매매인 만큼 9200억원의 매각대금은 회사가 아닌 박 의장 개인에게 귀속된다. 회사의 현금이 직접 늘어나는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네오펄스가 제시한 중국 사업 확대와 글로벌 신작 개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향후 별도의 증자나 투자 집행이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펄어비스 역시 지난 4월 '이브온라인' 개발사 CCP게임즈 지분 전량을 현지 경영진에 약 1771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2018년 인수 당시 투입한 약 2524억원보다 750억원가량 낮은 가격이다. 서구권 시장 확대를 위해 인수한 자산을 8년 만에 정리해 투자금 일부를 회수하는 대신 현금 확보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무게를 둔 결정으로 해석된다.
◆주머니 두둑한 대형사는 해외 성장동력 확보
반대로 재무여력이 충분한 대형 게임사들은 국내 기업보다 해외 개발사와 플랫폼, 콘텐츠 IP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공통으로 해외 이용자 기반과 유통망, 신규 장르를 한 번에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약 7103억원을 투입해 일본 광고·애니메이션 기업 ADK그룹의 모회사 BCJ-31 지분 100%를 인수했다. ADK가 보유한 애니메이션 IP를 게임으로 개발하고, 크래프톤의 게임 IP를 영상 콘텐츠로 확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게임 개발사를 직접 인수한 사례는 아니지만 콘텐츠 IP 확보 범위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으로 넓힌 투자다.
엔씨는 독일 모바일 캐주얼게임 플랫폼 저스트플레이 지분 70%를 약 3017억원에 인수했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북미·유럽 이용자를 확보한 캐주얼게임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저스트플레이는 자체 개발작을 포함해 40여종의 게임과 광고·보상 기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더블유게임즈도 약 413억원을 투입해 튀르키예 팍시게임즈 지분 60%를 인수했다. 기존 소셜카지노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캐주얼게임으로 장르를 넓히고 글로벌 개발·퍼블리싱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다.
◆국내 매물은 해외로…국내 자본도 해외로
최근 게임업계 M&A에서는 국내 게임사의 경영권은 해외 자본이 사들이고, 국내 대형 게임사의 투자금은 해외 기업으로 향하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경영권과 자산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이를 국내 대형 게임사가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국내 개발 조직이나 기존 IP보다 해외 이용자 기반과 유통망, 현지 개발 역량을 갖춘 기업의 투자 효율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은 재무제표만으로 미래 흥행 가능성과 개발조직의 기술력, 아이디어를 평가하기 어려운 산업"이라며 "인수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에 좋은 IP와 개발사를 확보하려는 반면 개발사는 무형의 경쟁력이 저평가됐다고 판단해 기업가치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가치평가 차이는 거래 성사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며 "국내 투자와 인수가 분쟁이나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가 누적됐고 일부 대형사의 공격적인 투자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국내 게임사들이 같은 업계 기업 인수에 더욱 신중해졌다"고 설명했다.
해외 기업 인수가 선호되는 이유는 비용 구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미 해외 시장에서 이용자와 유통망을 확보한 기업을 인수하면 현지화와 시장 진입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국내 개발사를 인수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콘텐츠 재설계와 마케팅 비용을 새롭게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높은 국내 개발자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국내 게임사 인수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식 게임을 해외에 출시하려면 현지화와 마케팅에 상당한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며 "이미 현지 이용자와 사업 기반을 갖춘 해외 게임사를 인수하면 관련 비용을 줄이면서 곧바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개발사의 글로벌 경쟁력과 개발자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국내 게임사를 인수할 유인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게임업계 M&A의 양극화는 향후 성장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산을 매각한 기업은 확보한 자금을 재무구조 개선과 차입금 상환에 우선 투입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인수에 나선 기업은 해외 이용자와 플랫폼, 신규 IP를 기반으로 신작 개발과 글로벌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M&A 전략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신작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 지배력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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