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띄운 JB금융지주와 BNK금융지주의 합병론이 결국 양사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두 금융지주를 통합해 총자산 234조원 규모의 '초대형 지방금융그룹'을 만들자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지역사회와 은행 노조의 반발, 금융당국 인가 부담 등이 겹치면서 논의는 시작 단계에서 멈춰 섰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주주가치 제고 논리와 지방은행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지역금융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라는 평가다.
다만 얼라인파트너스가 양사 이사회 의사록 열람 청구를 예고하며 후속 대응에 나선 만큼 지방금융 통합 논의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JB금융그룹과 BNK금융그룹은 지난 28일 얼라인파트너스가 주주서한을 통해 제안한 양사 합병안에 대해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 타당성 검토에 착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BNK금융은 "이사회에서 충분한 논의 끝에 합병 타당성 검토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도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JB금융도 "현시점에서 합병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합병 논의에 선을 그었다.
특히 BNK금융은 이사회 표결 결과까지 공개하며 내부 기류를 드러냈다. 출석 이사 8명 가운데 5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찬성은 2명, 기권은 1명이었다. 합병 필요성에 대한 이사회 내부 공감대가 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합병론은 얼라인파트너스가 최근 JB금융과 BNK금융에 주주서한을 보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 지분 14.83%를 보유한 2대 주주이며 BNK금융 지분도 1% 이상 보유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양사가 합병하면 총자산 약 234조원의 지방금융그룹이 탄생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디지털 투자 여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애초부터 현실화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방은행이 일반 상장회사와 달리 지역경제를 뒷받침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은 각각 지역 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 공급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금고 운영 등 지역 금융 인프라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금융지주 간 합병은 단순한 기업 결합을 넘어 지역경제와 정치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합병론이 제기되자 양 금융그룹 산하 4개 은행 노동조합과 지역 경제계는 잇달아 반대 입장을 내놨다. 자산 규모가 더 큰 BNK금융(부산·경남은행)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JB금융(전북·광주은행)과의 합병 논의 자체가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는 격"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인가 역시 넘어야 할 관문으로 꼽혔다. 대형 금융지주 간 합병은 금융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 만큼 주주 간 합의만으로 성사되기 어렵다. 금융시장 안정성과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실제 성사 가능성은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례는 국내 금융지주를 상대로 한 행동주의 펀드 전략의 현실적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반 제조기업이나 서비스기업은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사업 재편 등을 중심으로 주주가치 제고 논리를 펼칠 수 있지만 금융지주는 성격이 다르다.
금융회사는 주주뿐 아니라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 지역경제 기여 등 공공성이 함께 요구된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인가와 지역사회의 수용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만큼 단순한 기업가치 논리만으로 이사회와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방금융지주는 지역 정체성이 경영의 중요한 축인 만큼 행동주의 펀드가 제시하는 '규모의 경제' 논리와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지역금융 유지' 가치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지방금융 통합 논의가 완전히 진화된 것은 아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양사의 공시 직후 "즉시 이사회 의사록 열람을 청구해 어떠한 정보와 논의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렸는지 확인한 뒤 향후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2차전을 예고한 셈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위축, 시중은행과의 경쟁 심화, 인공지능(AI) 투자 부담 등 지방은행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에 대한 장기 전략을 양사 이사회가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단순히 합병을 거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대체할 성장 전략도 함께 설명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합병 타당성 검토에 착수하지 않겠다는 결과만 내놓았을 뿐, 이 같은 구조적 위기를 타개할 장기 전략이나 지주 통합을 뛰어넘을 만한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사록 검토 후 필요한 추가 입장을 밝히고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의사록 검토 이후 추가 주주제안이나 주주총회 안건 상정, 법적 대응 등 행동주의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양 금융지주가 합병 검토 자체를 공식 거부한 데다 지역사회와 금융당국이라는 변수도 여전한 만큼 단기간 내 통합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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