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시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강남 일부 단지에 집중됐던 정비사업이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 이른바 '압여목성'으로 확산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지의 현재 진행 상황과 각 권역이 갖는 의미, 건설사들의 전략을 차례로 살펴본다.
[딜사이트 배지원, 전재민 기자]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던 서울 핵심 재건축 사업장이 일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신속통합기획 확대, 자치구의 인허가 지원 기조가 맞물리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로 대표되는 이른바 '압여목성'은 서울 도시정비시장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압구정 6개 구역, 여의도 15개 단지, 목동 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4개 지구 등 약 40곳에 달하는 사업장이 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부분 수천 가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인 데다 총사업비만 수십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개포·잠실·잠원·서초 등 기존 강남권 재건축까지 더하면 서울 전역에서 초대형 정비사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이다.
사업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민선 9기 출범 이후 자치구들이 재건축 활성화에 적극 나서면서 인허가 절차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에 이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등 장기간 지연됐던 사업들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압여목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사업 규모만 때문이 아니다. 각 권역이 서울의 미래 도시 경쟁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압구정은 한강변 최고급 주거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여의도는 국제금융도시의 직주근접 주거를, 목동은 교육도시의 재탄생을, 성수는 창조산업과 하이엔드 주거의 결합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압구정, 서울 최대 부촌…한강변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핵심 사업지
압구정은 서울 재건축 시장의 상징이자 국내 최고급 주거시장의 기준이 되는 사업지다. 단순히 노후 아파트를 새로 짓는 차원을 넘어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변 도시공간 재편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한강변 수변공간과 보행축을 강화하고 글로벌 도시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압구정은 이러한 도시계획이 현실화되는 대표 사업지로 꼽힌다. 향후 한강변 스카이라인과 수변공간 활용, 공공성 확보의 기준을 제시하는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성도 압도적이다. 올해 최대 규모 정비사업인 압구정3구역(공사비 약 5조5000억원)을 비롯해 대부분 사업장이 초대형 프로젝트다.
수주전에서는 현대건설이 사실상 주도권을 잡았다. 현대건설은 압구정3구역을 확보한 데 이어 한화 건설부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압구정5구역까지 수주하며 '압구정 벨트'를 구축했다. 압구정2구역도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삼성물산은 압구정4구역을 확보하며 맞대응하고 있다.
현재 1구역과 6구역은 사업시행자 지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향후 이들 구역까지 시공사 선정에 들어가면 또 한 번 대형 건설사들의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여의도, 국제금융도시의 주거 기능 완성
여의도는 금융 중심지에서 직주근접 복합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금융기관이 밀집한 여의도는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지구다. 여기에 노후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화되면서 업무와 상업, 주거 기능이 결합된 도심 복합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여의도 재건축의 의미를 단순한 주택 공급보다 국제금융도시 경쟁력 강화에서 찾는다. 금융권 종사자와 전문직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고급 주거단지가 공급되면서 글로벌 금융도시들이 갖춘 직주근접 주거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수주전은 삼성물산 중심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최근 시공사 입찰을 마감한 목화아파트 재건축에는 삼성물산만 입찰서를 제출했다. 기존 312가구를 철거하고 최고 49층, 428가구 규모 주상복합을 짓는 사업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경쟁입찰 가능성을 높게 봤다. 지난 5월 현장설명회에는 대우건설과 GS건설, 롯데건설, IPARK현대산업개발 등 7개 대형 건설사가 참석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입찰을 확정하자 다른 건설사들은 모두 참여를 포기했다. 수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사비만 2조원이 넘는 시범아파트도 삼성물산의 단독 입찰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재 삼성물산 외에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하는 건설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아파트는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선정된 가운데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고, 광장아파트는 현대건설이 단독 입찰했다. 대교아파트는 관리처분인가를 마치고 하반기 이주를 앞두는 등 여의도 전역에서 사업 단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목동, '교육 1번지'의 세대교체 시작
목동은 압여목성 가운데 사업 규모가 가장 크다. 14개 단지가 모두 재건축되면 기존 2만6629가구는 4만7438가구로 늘어난다. 총사업비는 30조원을 웃돌아 사실상 하나의 신도시를 새로 조성하는 수준이다.
목동 재건축은 대한민국 대표 교육도시의 재탄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1980년대 계획도시를 대표하는 목동은 우수한 학군을 기반으로 '교육 1번지'라는 위상을 유지해왔지만 준공 40년을 앞두면서 주거시설과 기반시설의 노후화가 과제로 떠올랐다.
재건축은 단순한 아파트 교체를 넘어 평면형 계획도시를 고밀도·입체형 미래도시로 바꾸는 작업이다. 기존 교육 인프라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주거환경을 결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업을 서두르는 이유도 분명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2030년 11월부터 새로운 고도제한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추진 중인 최고 45~49층 설계가 30층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각 조합은 2030년 이전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신시가지 7단지가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서 조합 설립을 마친 단지가 5곳으로 늘었다.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6단지다. DL이앤씨가 단독 입찰한 가운데 이달 말 총회를 통해 시공사를 확정할 예정이다. 13단지는 예정 공사비 약 2조3762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으로 시공사 선정 절차에 돌입했고, 10단지도 최근 입찰 공고를 냈다.
양천구도 최근 '목동아파트 이주계획 안정화 방안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2029년부터 대규모 이주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월세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성수, 강북 최고급 주거지로 진화
성수는 과거 공장지대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창조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한 지역이다. IT기업과 스타트업, 연예기획사, 패션 브랜드, 문화 콘텐츠 기업, 트렌디한 F&B가 밀집하면서 M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문화·산업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은 이러한 산업 변화에 하이엔드 주거 기능을 결합하는 사업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한강변 초고층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강북 최고급 주거벨트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강남과 강북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1지구는 GS건설, 4지구는 롯데건설이 각각 시공권을 확보했다. 남은 2·3지구가 하반기 최대 관심사다. 3지구는 총사업비 약 1조8275억원 규모로 삼성물산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72층, 2213가구 규모의 초고층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2지구는 DL이앤씨와 IPARK현대산업개발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총사업비는 약 2조137억원으로 지하 5층~지상 65층, 2381가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다만 성수는 재건축이 아닌 재개발 사업이라는 점에서 변수도 있다. 상가와 소형 지분 소유자의 분양권, 감정평가, 이주비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해 사업 과정에서 갈등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실제 성수2지구에서는 소형 상가 소유자의 분양 자격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됐고, 성수4지구 수주전에서도 소형 지분의 담보가치와 이주비 조건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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