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울 기자] 저축은행업권이 책무구조도 제도 시행 첫 주를 맞았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내부통제 강화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자산 7000억원 이상 저축은행들이 책무구조도 제출을 마치면서 업권 전반의 책임경영 체계 구축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임원별 책무를 실제 조직 운영에 안착시키는 과정이 제도 정착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산 7000억원 이상 저축은행 33곳은 지난주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별 담당 업무와 내부통제 책임 범위를 사전에 정리하는 제도다. 임원별 책무와 관리의무를 명확히 규정해 내부통제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선 제도 취지에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저축은행이 그동안 부동산 PF 부실, 대출 심사 및 사후관리 문제, 내부통제 미흡 이슈 등으로 지속적인 감독 대상이 돼 온 만큼 책임경영 체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사고 발생 이후 책임 소재를 따지는 사후 대응을 넘어 위험 요인을 사전에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다만 시행 첫 주부터 현장에서는 임원 겸직이 많은 저축은행 조직 특성이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은행권과 달리 조직 규모가 크지 않아 임원 한 명이 여러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는 업무별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도록 설계됐지만 실제 업무는 여러 조직이 함께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운영 과정에서 책임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숙제로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A저축은행 관계자는 "임원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 구조가 아니다 보니 실제 업무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예를 들어 여신이나 리스크 관리처럼 여러 부서가 함께 관여하는 업무는 책무를 어디까지 나눠야 할지 계속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서상으로는 책임을 세분화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도 그 경계를 얼마나 명확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가 과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책무구조도가 일회성 제출로 끝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책무구조도는 조직 개편이나 업무 변경이 발생하면 내용을 수정해야 하고 임원별 책무 이행 여부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사후 점검 과정에서 실제 이행 여부를 살펴볼 예정인 만큼 단순히 문서를 제출하는 것을 넘어 내부통제 운영 체계 전반과 연계해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다.
B저축은행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는 제출보다 운영이 더 중요하다"며 "정기적으로 책무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증빙도 계속 남겨야 하기 때문에 실무진 업무 부담은 이전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에서는 내부통제가 자칫 사고 예방보다 보고와 기록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임원별 점검 항목이 늘어나면서 실제 위험 관리보다 책임 이행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문서 작업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책임 강화는 영업 현장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원 책임이 명확해진 만큼 신규 사업이나 여신 확대 과정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움직임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금리대출 확대나 신규 사업 추진, PF 정상화 과정 등에서 책임 부담을 의식한 보수적 의사결정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C저축은행 관계자는 "신규 사업이나 대출을 확대했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담당 임원의 책임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구조"라며 "내부통제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의사결정은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자산 7000억원 미만 중소형 저축은행으로 제도가 확대되면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전담 인력과 시스템 구축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사는 임원 겸직 비중이 더 높은 만큼 책무를 세분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클 수 있어서다. 중소형 저축은행들은 별도 내부통제 조직이나 전담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제도 이행 부담이 대형사보다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 규모와 조직 특성을 고려한 추가 운영 가이드라인과 금당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초기 운영 부담과 별개로 책무구조도가 저축은행 내부통제 체계를 한 단계 고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모호했던 임원별 책임과 권한이 보다 명확해지는 만큼 제도가 안착할 경우 책임경영 문화도 점차 자리 잡을 것이라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기에는 실무 부담이 불가피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책무구조도를 실제 내부통제 체계와 연결해 운영하는 것"이라며 "제도가 자리 잡으면 사고 발생 이후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사전에 위험을 관리하는 문화도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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