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민 기자] 넥슨이 대표 장수 온라인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 서비스를 오는 8월 종료하기로 한 가운데 '어둠의전설', '일렌시아' 등 장수 PC온라인게임들의 향후 서비스 지속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넥슨 내부에서는 패트릭 쇠더룬드 회장 취임 이후 고강도 체질 개선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기업의 뿌리인 지식재산(IP) 헤리티지마저 수익성 논리에 따라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은 오는 8월13일 장수 온라인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 서비스를 종료한다. 2001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약 25년 만이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물풍선을 활용해 상대 캐릭터를 가두고 터뜨리는 방식의 대전 게임이다. '다오', '배찌', '디지니' 등의 캐릭터를 앞세워 2000년대 PC방 문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넥슨의 대표 지식재산(IP)인 '크레이지 파크' 세계관의 시작점이자 초기 캐주얼 온라인게임 시장을 상징하는 타이틀로 꼽힌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넥슨은 이르면 지난 4월 무렵부터 크레이지 아케이드 서비스 종료 방향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기여도 및 이용자 지표가 내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넥슨은 지난 3월 패트릭 쇠더룬드 회장 취임 이후 수익성이 부진한 프로젝트를 잇따라 정리하고 있다. 투자수익률(ROI)에 기반해 프로젝트 지속 여부를 가르는 이른바 '옥석 가리기'다. 회사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핵심 지식재산(IP) 확장 및 흥행 가능성이 높은 차기작 개발에 자원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기준은 장기 서비스 게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넥슨은 최근 3년 동안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버블파이터 서비스 종료를 잇따라 확정했다. 모두 2000년대 PC방 전성기를 함께 연 캐주얼 게임이자, 넥슨의 초기 성장을 이끈 타이틀이다. '크레이지 아케이드'까지 더하면, 넥슨의 '캐주얼 전성기'를 상징하던 라인업이 사실상 해체되는 셈이다.
그룹 내부에선 향후 정리 수순에 들어갈 게임으로 ▲어둠의전설 ▲일렌시아 ▲사이퍼즈 ▲아스가르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실상 국내 게임의 살아있는 전설로 꼽히는 '바람의나라'를 제외한 장수 게임들은 서비스 종료 사정권에 들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이들 게임의 공통점은 최근 5년간 실적발표 및 공시에서 언급되지 않아 매출 추이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넥슨 일본법인의 2021~2025년 유가증권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해당 타이틀들은 본문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카트라이더의 경우 지난 2023년 메이플스토리·던전앤파이터와 함께 '대표 장수 IP'로 언급됐으나, 2024년부터 해당 설명이 사라졌다.
이용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PC방 게임 통계서비스 '더로그'에 따르면 이날 기준 사이퍼즈(26위)와 크레이지 아케이드(50위)를 제외하면 인기 게임 순위 50위권에서 이들 게임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신규 이용자 유입이 정체되면서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수익이 내부 기준선을 밑돌게 됐다는 분석이다.
회사의 논리는 명확하지만, 조직 내부 동요는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넥슨의 한 관계자는 "수익성 측면 때문에 대체로 '어쩔 수 없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구조조정 가능성이 지속 회자되며 전반적으로 사기가 저하되는 분위기"라며 "일각에선 '회사의 기틀을 다진 상징적 프로젝트조차 하루아침에 종료되는데, 다른 프로젝트라고 안전하겠냐'는 격한 반응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넥슨의 또다른 관계자는 "새로운 회장 취임이후 각종 비용들을 줄이고 있는 추세이고 수익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분위기"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FC온라인,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서든어택 등 수익을 내고 있는 게임을 제외하고는 다른 프로젝트가 언제 중단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선 이번 결정이 넥슨의 기업 근간과 정체성을 흔들면서, 이용자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의 사업철학과 정면충돌하는 데다, 수익성에 따라 언제든 게임 서비스가 종료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넥슨은 회사를 '한국의 디즈니'로 만들겠다는 김 창업자의 생전 비전에 따라, 손익분기점(BEP)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1세대 게임들의 서버를 유지해 왔다. 우수한 유지·보수 역량을 토대로 이들 게임의 생명력을 늘린 결과, IP 확장에 성공해 회사 성장 발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쇠더룬드 회장 취임 이후 수익성 개선에 무게가 실리면서, 이 같은 기조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수 IP 정리 기조는 기존 서비스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용자들 사이에선 크레이지 아케이드 캐릭터를 활용한 신작 '카트라이더 클래식'의 개발 지속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말 이용자 대상 설문조사 이후 이렇다 할 개발 현황이 전해지지 않는 데다, 티저 영상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다. 넥슨이 최근 공개한 2026~2028년 신작 라인업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장수 IP 기반 신작마저 표류하면서 '수익성이 낮으면 추억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신호가 한층 짙어졌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넥슨 관계자는 "현재로선 개별 타이틀의 서비스 종료 여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경우 장기적으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사업적 판단에 따라 8월 종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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