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준우 기자] 한국벤처투자가 중소형 벤처캐피탈(VC)의 경영 부담을 고려해 자펀드 공정가치 평가 제도 개편안을 대폭 완화했다. 당초 연 2회 외부 회계기관 위탁 평가를 강제하려던 방침을 연 1회로 축소하고 청산 절차에 돌입한 펀드는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자펀드 관리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였으나 현장의 행정적·비용적 현실을 고려해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정한 결과다.
12일 VC 업계에 따르면 한국벤처투자는 최근 모태펀드 위탁운용사(GP)들에 자펀드 공정가치 외부 위탁 평가를 매년 12월 연 1회만 실시하도록 변경한다고 정정 안내했다. 지난달 연 2회(6월·12월) 외부 기관 위탁 평가를 의무화하겠다는 지침을 내린 지 한 달 만의 입장 선회다. 청산 진행 중인 펀드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달 예정됐던 상반기 평가는 기존처럼 각 하우스의 자체 기준에 맞춰 진행된다.
당초 한국벤처투자는 자펀드별로 상이한 가치평가 기준을 표준화하고 모태펀드 관리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외부 위탁 제도를 도입했다. 산업은행 등 다른 정책금융기관의 출자를 받은 하우스들이 이미 외부 기관 검증을 거치고 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외부 평가 비용은 건당 약 150만원 수준으로 한국벤처투자가 지급하는 관리보수와 GP 부담분으로 분담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하지만 자본력이 취약한 소형 VC를 중심으로 불만이 제기됐다. 운용 자산 규모가 작은 하우스 입장에서는 수십 개 피투자기업의 외부 평가 비용이 누적될 경우 상당한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많은 벤처펀드의 특성상 매출이 없거나 적자 상태인 기업이 많아 외부 회계기관이 고유의 기업가치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작용했다.
한 VC 관계자는 "관리보수 일부를 보전받더라도 소형 하우스가 감당해야 할 절대적 비용 부담이 크다"며 "초기 기업의 미래 가치를 기계적인 회계 기준으로만 재단하는 외부 평가 방식 자체에 실효성이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간 출자자(LP)들과의 조율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이 예상됐다. 은행이나 캐피탈사 등 상당수 민간 금융기관들은 이미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투자자산 가치평가를 별도로 수행하고 있다. 모태펀드 요구로 외부 기관 평가 결과가 추가될 경우 동일 자산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액이 산출되어 자산운용 혼선과 비용 이중 지출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다른 VC 관계자는 "민간 LP의 자체 평가와 외부 기관의 결과가 다를 때 이를 출자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 자체가 운용사에게는 또 다른 규제이자 난관"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완화의 물꼬를 튼 것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의 적극적인 소통이었다. 김학균 VC협회장은 제도 개편 소식 직후 회원사들의 의견과 현장의 애로사항을 면밀히 취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협회장은 초기 기업 투자 위축 우려와 소형 VC의 생존 문제를 규제 당국인 한국벤처투자 경영진에 명확히 전달하며 지침 수정을 이끌어냈다.
한국벤처투자 역시 출자 사업 파트너인 GP들의 목소리를 전향적으로 수용했다. 자펀드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면서도 업계의 피드백을 신속하게 수용했다는 점에서 시장 친화적인 소통 행보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최근 자펀드 공정가치 평가를 연 2회 외부 평가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려 했으나 일부 운용사들의 반발이 있었다"며 "VC협회와의 긴밀한 소통으로 업계 의견을 수용해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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