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삼표그룹의 승계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재계는 오너 3세 정대현 사장이 그룹사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걸린 '시간'에 주목하고 있다. 부모 세대인 정도원 그룹 회장이 그룹을 장악한 2000년대부터 아들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법 등으로 장장 20여년에 걸쳐 승계를 준비해 온 까닭이다.

현재 삼표그룹의 지배구조는 정도원 회장과 정대현 사장이 각각 삼표산업, 에스피네이처네이처를 이끄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론 삼표산업이 그룹 주력사 삼표시멘트와 삼표피앤씨 등을, 에스피네이처는 홍명산업과 청암, 코스처, 에스피환경 등 레미콘산업 유관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 구조에서 눈길을 끈 부분은 정대현 사장과 에스피네이처가 지주사격인 삼표산업 주식도 각각 5.22%, 18.23%소유, 정 회장(30.33%)에 이은 유력 주주로 자리 잡고 있단 점이다.

이는 정도원 회장이 에스피네이처를 장기간 육성해온 결과로 풀이된다. 정대현 사장의 개인회사격인 에스피네이처는 과거 '대원' 이란 이름으로 설립, 한동안은 이렇다 할 사업을 벌이지 않다 2007년부터 성장가도를 달렸다. 정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물류사 삼표로지스틱스를 대원에 붙여주면서다. 특히 2010년의 경우 삼표로지스틱스는 2010년 매출 1463억원 가운데 83.8%(1226억원)를 계열사로부터 벌어들이며 모회사 대원의 사세 확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류로 재미를 본 대원은 M&A로 덩치를 키워갔다. 2013년을 기점으로 삼표로지스틱스를 포함해 삼표기초소재와 알엠씨, 남동레미콘 등 정대현 사장의 개인회사들을 잇따라 흡수합병 했다. 이후 대원은 2019년 에스피네이처로 사명을 바꾼 뒤 내부거래·M&A를 통해 얻은 재원을 바탕으로 그룹 지배력 확보에 나섰다.

에스피네이처는 먼저 2020년 ㈜삼표(現 삼표산업)가 단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해 ㈜삼표 지분 19.43%를 손에 쥐었다. 정대현 사장 입장에선 '기술'로 키워낸 개인회사 덕분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그룹 지주사 지분을 챙긴 셈이다.

이러한 작업은 올해도 지속됐다. 에스피네이처는 올 7월 삼표산업이 ㈜삼표를 역합병하기 전인 지난 3월 삼표산업의 유상증자에도 등장했다. 이를 통해 회사 지분을 1.74%에서 17.21%로 확대하며 새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도 챙겼다. 이 덕분에 정대현 사장과 에스피네이처는 통합 삼표산업의 의결권 행사가능 주식 가운데 42.4%를 확보했고 부친과의 지분 격차 또한 과거 35.22%포인트에서 12.4%포인트로 줄였다.

따라서 정대현 사장에 남은 과제는 부친이 소유한 통합삼표산업 지분(30.33%)을 취득 뿐이며, 정씨 일가가 어떤 방식을 택할지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 사장이 개인회사인 에스피네이처를 동원, 정도원 회장의 주식을 사들일 시엔 증여세 회피에 따른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만큼 다른 방법을 구사할 필요가 있어서다. 이에 시장은 정 사장이 에스피네이처 지분을 일부 정리하거나 삼표산업이 에스피네이처를 합병해 정 사장에 합병신주를 내주는 식으로 1대 주주를 바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느 그룹과 같이 삼표 역시 부친이 아들 회사를 전략적으로 키워주는 형태로 승계작업을 벌였다"며 "이를 20여년에 걸쳐 진행했다는 부분이 이채롭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7월 삼표산업이 ㈜삼표를 역합병하면서 대량의 자사주가 발생했는데 해당 지분이 승계에 어떻게 쓰일지 여부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삼표그룹 관계자는 "현재로선 승계작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