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성희 차장]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가장 먼저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유명한 '맥킨지 7S 모델'의 첫 단계로, 조직이 직면한 문제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후에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을 위한 중요한 이슈를 식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한 뒤 가설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개발한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뒤흔들 가장 큰 뇌관은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 긴축 정책을 펼치며 가계부채 감축이란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상생 및 포용금융 정책이 긴축 정책의 효과를 상쇄시키고 있다. 한겨울 독감 환자를 위해 처방약을 먹이고 방의 온도를 올렸더니, 더울 수 있다고 창문을 열어놓은 격이다.

금리인상이라는 고강도 약을 처방했는데, 약효를 방해하는 당국의 엇박자 대출 정책이 경제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금융안정을 위해선 가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필요하다. 한은은 금리 인상으로 디레버리징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지만, 정부는 오히려 부동산 규제 완화와 대출금리 인하, 대환대출 시행 등으로 대출을 부추겼다. 긴축통화 정책과 확장재정 정책이 동시에 이뤄져 충돌하는 상황이 한동안 벌어졌다. 

이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4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동결 결정을 밝히며 "가계부채가 지금 수준보다 더 올라갈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미 그 수준은 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1068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 원인으로 ▲은행들이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 ▲인터넷은행의 비대면 주담대 ▲정책모기지 등을 지목했다. 대책 없는 책임전가에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은 없다.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기존 최장 만기가 30년이었지만 지난해 정부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완화 대신 주담대 만기 연장을 허용했다. 금리 인상기에 대비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완화해주자는 취지에서였다.

인터넷은행의 비대면 주담대는 지난 6월 실시한 대환대출플랫폼 영향이 크다. 차주의 대환 가능성에 따라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금리를 조정하는 등 업권 간 경쟁을 통해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고자 한 것이 당국의 의도였다.

물론 이해는 간다. 고금리 기조로 인한 이자상환 부담을 덜어준다면 부실로 빠질 수 있는 대출이 상환 가능한 대출로 재분류될 수 있고, 금융 시스템 안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기존 대출자의 상환 부담 완화 효과만이 아니라, 신규 대출을 발생시켰다는 점이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약 15년만에 최고로 높은 금리(3.5%) 환경에서 가계대출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웃지못할 상황에 처했다.

당국은 이제라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당장의 면피를 위한 책임 떠넘기기 식의 근시안적 대응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공감해 줄 이들도 없다는 점을 깨닫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