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지수 기자]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 또한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기관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0일 진행한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이와 같이 밝혔다.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강 회장의 결론은 명확했다. 산은 본점의 부산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강 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산이전과 관련한 당위성을 여러 차례 주장했다. 지역 성장과 동남권 경제의 부흥 필요성을 주장했고, 당장의 경쟁력 약화를 고려하더라도 정책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을 도맡아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언급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질문과 답변에서 전해진 행간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강 회장은 이날 노조와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심적 어려움을 토로하며 "직원들과 산은이 부산에 가지 않는다는 옵션을 갖고 토론을 하기에는 제가 그런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강 회장의 발언은 산은에 내재한 문제를 또 한번 보여주는 격이다. 산은은 정부인 기획재정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특성상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불가피하다. 부산이전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까지 언급된 사안이다 보니 "그런(부산이전을 저지하는) 역할까지는 할 수 없다"는 강 회장의 호소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은 회장의 권위는 정부가 주장하는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구상하고 소통하는 데서 나온다. 정부 정책에 반(反)하진 못하더라도, 타당성 조사 등을 통해 정부의 판단이 잘못된 부분이나 득과 실이 있다면 그와 관련한 논리를 세우고 설득할 수는 있다. 그건 정부에 대한 설득이 될 수도 있고, 노조 구성원들에 대한 설득일 수도 있다. 

산은 노조가 강 회장에게 요구하는 내용 또한 정부 공약에 반하라는 것이 아니라 수장으로서 합리적인 대안을 갖고 중재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본점 부산 이전과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데 그쳤다.

산은이 정치적 결정에 동원될 경우 얼마나 비효율성이 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2015년 정부 고위인사들이 참여하는 비공개 회의인 '서별관 회의'에서 부실 의혹을 낳았던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이 넘는 자금 지원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 또한 이와 같은 예시로  언급된다.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정부에 따라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산은 수장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전임 회장의 경우 전 정부에서 지정한 인물이란 한계가 있었지만 산은 본점의 부산이전과 관련한 타당성에 대해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미 이 문제가 공론화된 상황에서 현 산업은행장이 전임 회장과 동일한 논조를 이야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거론된 문제가 합리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수장으로서 고민하고 정부와 정치권에게 공청회 개최라도 요청해 본 적이 있던가. 산은은 '정부'금융기관이 아니라 정책금융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