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얼마 전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지침에서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가 광물로 인정됐다. 만일 배터리 부품으로 인정됐다면 국내 기업들은 북미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해야만 세금보조 대상에 포함되는 상황이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국산 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주식 시장에서도 2차전지 관련 종목 열풍이 불었다. 양극재 제조기업 에코프로 주가는 연초 대비 7배 이상 급등하는 등 과열 양상도 보였다. 매도 리포트가 나오며 주가 오름세는 꺾였지만, 2차전지 산업에 대한 투자자의 높은 관심을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국내 신용평가사 역시 당분간 2차전지 산업이 높은 성장성을 이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연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상장예비심사(예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후성글로벌과 유진테크놀로지 등 관련 기업들도 공모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해 불었던 2차전지 산업 열풍이 재연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처럼 2차전지 산업에 대한 시장 관심이 커지자 KB증권도 씁쓸한 미소를 짓는 모양새다. 지난해 IPO를 대표주관한 배터리 분리막 제조사 더블유씨피(WCP) 때문이다. 조 몸값에 도전한 WCP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참패하며 공모가를 희망밴드(8만~10만원) 하단인 6만원으로 확정했다.

상장 후 주가 역시 4만~5만원대로 공모가를 한 차례도 넘지 못했다. KB증권 리서치센터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WCP에 대한 매수 의견(목표주가 7만원)을 담은 리포트를 발간했으나 주가 상승효과는 '반짝'에 그쳤다.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KB증권도 후폭풍을 맞았다. KB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WCP 주식 82만7977주를 보유하고 있다. 2021년 25만5934주(주당 7만8319원, 200억원)를 확보했으나 지난해 57만2583주가 추가됐다. 상장 후 기업 주가가 90% 이하로 하락하면 주관사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환매청구권이 행사된 것으로 보인다. WCP 환매청구 가격은 5만4000원이다.

현재 주가(5만~5만3000원)를 고려했을 때 대규모 평가 손실이 우려되지만, KB증권은 내부적으로 WCP 주가가 오를 때까지 보유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기대에 부응하듯 WCP 주가도 IRA 세부지침 발표 뒤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공모 흥행에 실패한 기업이 재평가받는 것은 흔한 일이다.

"승리하면 작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명예의 전당 헌액자 크리스티 매튜슨이 남긴 말이다. 성공도 중요하지만 실패도 실패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올해 1분기까지 IPO 시장에서 맥을 못 추던 KB증권은 최근 에코아이와 에스와이스틸텍 상장 추진에 나서며 기지개를 피고 있다. LG CNS와 휴맥스모빌리티 등 조 단위 딜(Deal)도 수임해둔 상태다. KB증권이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평판 회복에 성공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