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지난달 LG디스플레이는 LG전자로부터 1조원의 자금을 수혈받았다. 이번에 확보한 자금은 기업들이 위기일 때 공격적인 경영의 하나로 신성장동력을 발굴을 위한 투자금의 성격이 아니다. 공장을 돌리고 인건비를 지급하기 위한 운영자금이 부족했던 게 차입의 주된 이유다.

현재 상황만 보자면 LG디스플레이는 운이 좋은 기업은 아니다. 디스플레이는 기간산업으로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를 했다가 지칫 실패하면 부담이 만만치 않다. 

10년 전 LG디스플레이는 신성장동력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낙점한 뒤 대형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대형 OLED 패널 상용화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그만큼 수익성 확보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업의 승패를 가를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에 진입한 것이다. 

반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중소형 OLED 패널 시장을 개척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유례없는 호실적을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오는 2026년까지 8.6세대 IT용 OLED 패널 생산을 위해 총 4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최소한의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힌 LG디스플레이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최근 한 신용평가사가 진행한 세미나에서는 향후 1~2년간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변곡점이 될 사건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OLED 패널 경쟁력 확보 ▲애플 기기에 대한 OLED 패널 침투율이 꼽혔다. 삼성디스플레이와 함께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을 양분하는 LG디스플레이지만 가까운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의 변화를 이끌 변수로도 거론되지도 못했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LG디스플레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수익 구조를 개선해 자체적인 현금창출력을 키우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주력 제품인 대형 OLED 패널의 상용화 시기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애플향 중소형 패널 수주를 늘리자니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다. 대규모 투자금 집행을 감당하기에는 현금흐름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만큼, 재무안정성과 신사업 투자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그렇다면 LG디스플레이는 정말 경쟁력 없는 회사일까.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 다양한 혁신 제품을 선보였다. 투명 OLED 등 자율주행 전기차에 탑재될 법한 차량용 패널부터 스피커를 대체하는 인포테인먼트(IVI)용 패널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전방업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형 패널 부문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20%를 상회하는 견조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업계 선두를 유지해 왔다. 투자자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의 선전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곳간이 넉넉하지 않은 현 상황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LG디스플레이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신시장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 패널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중소형 패널 시장처럼 대형 패널 시장도 언젠가는 OLED 패널 침투율이 과반을 넘어설 것이다. 

LG디스플레이의 과제는 화려하게 피어날 대형 OLED 시대를 맞기 위해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지혜롭게 견뎌내느냐이다. 어떤 사업이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