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한화손해보험이 자회사 캐롯손해보험의 향후 운명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캐롯손해보험이 출범 이후 해마다 수백억원대 적자를 내면서 사실상 외부 자금지원 없이 자본적정성을 관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화손해보험 앞에 놓인 선택지로 크게 유상증자와 흡수합병 등이 거론된다. 한화손해보험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캐롯손해보험의 운명이 바뀌는 것은 물론 한화그룹의 디지털 금융 전략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어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손보는 캐롯손보와 협의체(TF)를 구성해 합병을 포함한 재무건전성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문효일 캐롯손보 대표도 최근 직원 타운홀 미팅에서 "매각은 없다"고 선을 그으며 대신 유상증자나 한화손보와의 흡수합병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내 1호 디지털 손해보험사'라는 타이틀을 안고 2019년 5월 설립된 캐롯손보는 한화손보를 중심으로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합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캐롯손보의 최대주주는 한화손보로 지난해 말 기준 지분 59.57%를 보유하고 있다.
캐롯손보는 운행한 거리만큼 보험료를 내는 '퍼마일 자동차보험'을 앞세워 자동차 보험시장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수익성과 건전성은 좀처럼 회복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662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23년(760억원)과 비교해 손실 규모는 줄었지만 출범 후 이어지고 있는 적자 행진을 끊지 못했다. 2019년 91억원이던 순손실은 2020년 381억원, 2021년 650억원, 2022년 795억원으로 집계됐다.
계속된 손실로 자본이 줄면서 자본건전성 관리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한화손보는 2021~2023년 세 차례 유상증자에 참여해 모두 2300억원가량을 수혈했다. 하지만 결손금이 쌓이면서 캐롯손보의 지급여력비율은 금융당국 권고 수준까지 밀렸다.
지난해 말 기준 캐롯손보의 지급여력(K-ICS, 킥스)비율은 156.24%로 전년대비 125.02%포인트 하락했다. 작년 말 기준 누적 결손금은 3500억원에 이른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지급여력금액(가용자본)에서 지금여력기준금액(요구자본)으로 나눠 산출한다. 결손금은 가용자본 중 기본자본 항목에 반영되기 때문에 누적 손실이 커질수록 지급여력비율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한화손보는 현재 캐롯손보의 자본적정성 관리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유상증자와 흡수합병 등이 거론된다. 두 방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캐롯손보의 향후 존속 여부뿐 아니라 한화그룹의 디지털 금융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흡수합병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전과 달리 실제로 실행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의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는 점 자체가 경영 전략 전환의 강한 신호가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반복된 지원에도 캐롯손보의 상황은 점차 악화했다는 점도 유상증자 대신 흡수합병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을 보태는 요인이다. 특히 한화손보도 금리 인하 등에 대응해 내부 자본건전성 관리에 신경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손보의 지급여력비율은 211.9%로 전년대비 20.8%포인트 떨어졌다. 경과조치 적용 전 기준으로는 173.9%로 파악됐다.
한화손보가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선택하면 '캐롯'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캐롯손보 법인은 정리되고 캐롯손보의 고객, 계약, 자산 등은 한화손보가 이어받게 된다. 업계에서는 한화손보가 다른 캐롯손보 주주가 보유한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한 뒤 흡수합병할 것으로 보고 있다.
흡수합병 결정은 한화그룹의 디지털 금융 전략을 향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결국 캐롯손보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는 점은 사실상 국내 최초 디지털 손보사의 실패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한화그룹은 한화손보를 통해 손해보험업을 영위하고 있었음에도 캐롯손보를 설립해 디지털 보험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금융당국이 온라인 규제를 완화했던 만큼 별도의 플랫폼을 마련하는 편이 핀테크 기반 보험상품 출시 및 판매 등 디지털 보험 전략을 수행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일각에서는 캐롯손보의 결말이 한화그룹 금융계열사 승계가 점쳐지는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경영 능력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캐롯손보가 설립된 2019년 김 사장은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를 맡아 캐롯손보 출범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손보 관계자는 "자회사인 캐롯손보의 자본건정성 정상화를 위해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 중이다"며 "보험업의 특성상 자본건정성 유지를 위해 꾸준한 자본확충이 요구되는바 이에 대한 재무건정성 해결 방안을 모색이고 합병도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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