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원익그룹이 이용한 회장의 세 자녀(이규엽·이규민·이민경)가 최대주주로 있는 '호라이즌(옛 호라이즌캐피탈)'을 통해 지배구조를 구축하며 승계에 나설 전망이다. 이용한 회장이 최소한의 자금으로 호라이즌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끌어올린 덕에 오너 2세들은 증여세 부담 없이 원익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자연스럽게 키워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향후 승계 작업도 장남인 이규엽씨를 중심으로 한층 수월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호라이즌은 현재 원익의 최대주주로, 지분율은 46.33%에 달한다. 기존에는 이용한 회장과 호라이즌, 원익이 원익홀딩스를 공동으로 지배하고, 원익홀딩스가 그 아래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원익 지분 전량을 넘겨 받으면서 그룹의 핵심적인 지배 주체로 부상하게 됐다. '이 회장 일가→호라이즌→원익→원익홀딩스'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를 구축하게 된 것.
자산평가사인 호라이즌은 1999년 설립된 회사로, 그동안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작년에야 원익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그 실체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호라이즌의 대표이사는 임창빈 원익QnC 대표이사가 겸직 중이다. 부동산 자산평가 및 관리를 주된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매출은 없다.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호라이즌의 가용 가능한 유동자산은 53억원인 반면 차입금은 132억원에 달한다. 자본총계가 3억원이라 부채비율만 4395%에 이르렀다.
이처럼 재무 여건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승계 작업의 핵심 축으로 활용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호라이즌은 지난해 8월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원익 지분 전량(38.18%, 694만5606주)을 블록딜(시간외매매) 방식으로 263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하지만 자체 수익이 없는 탓에, 주식 인수와 동시에 이 회장으로부터 213억원을 단기 차입했다. 즉 이 회장에게 조달한 자금으로 그의 지분을 사들인 셈이다.
이 회장의 설계 덕에 세 자녀들은 별다른 자금 부담 없이 앉은 자리에서 시가총액 5조원에 계열사 수만 90여개에 이르는 원익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호라이즌을 통해 원익홀딩스의 지분을 직접적으로 확대하는 데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시가총액 기준으로 원익홀딩스의 약 10% 수준에 불과했던 원익 지분을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라이즌은 동시에 원익홀딩스 지분 1.07%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지분을 17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33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호라이즌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소량에 불과하지만, 지배권 프리미엄이 반영될 수 있어 향후 승계를 위한 계열사 조정 과정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경영권 이전 작업도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호라이즌은 장남인 이규엽과 차남인 이규민이 각각 26.67%, 막내인 이민경이 20.00%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다. 우선주까지 포함하면 이규엽·이규민이 각각 37%, 이민경이 26%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이규엽은 원인큐엔씨 전무, 이규민은 원익IPS 상무로 각각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호라이즌 지분을 동등하게 보유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적인 승계 구도에서는 장남인 이규엽에게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평가다.
1983년생인 이규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를 졸업한 뒤, 원익머트리얼즈 해외영업팀장과 원익홀딩스 부장을 거쳐 2021년 원익큐엔씨에 합류했다. 이후 세라믹개발영업팀장, 세라믹영업본부장, 글로벌전략팀장을 역임하며 현재는 전무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세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이 회장과 함께 호라이즌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임창빈 호라이즌 대표이사까지 총 세 명이 호라이즌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차남인 이규민(38)은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22년 원익홀딩스에 합류, 투자전략팀장을 맡았다. 이후 지난해 원익IPS로 자리를 옮겨 상무로 활동 중이며, 원익로보틱스 사내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막내인 이민경(36)은 헬스케어 분야를 중심으로 다소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엠디아이티와 병원과컴퓨터 대표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케어랩스의 대표이사직도 겸하고 있다. 이외에도 바비톡, 이디비, 굿닥 등 그룹 내 헬스케어 계열사 10여곳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이규엽과 이규민이 원익그룹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소부장 부문을 중심으로 경영 전반을 이끌고, 이민경이 헬스케어 부문을 전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이 회장은 이번 승계 작업을 마친 후에도 원익홀딩스 18.1%, 원익큐엔씨 19.4%, 원익큐브 1.3%, 원익투자파트너스 7.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어떻게 증여할 지도 관건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자녀들에게 경영권의 기틀을 마련해주면서도,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유지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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