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 추심으로 사세를 키운 한빛자산관리대부가 금융업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심에 선 건 저축은행 인수다. 올 들어 HB저축은행 지분 과반을 확보한 데 이어, 참저축은행 경영권까지 사들였다. 듀얼뱅크(Dual Bank) 체제를 구축한 한빛자산관리대부의 저축은행 인수합병(M&A)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최양해, 문지민 기자] 저축은행 분리 작업을 마친 한빛자산관리대부(이하 한빛대부)가 ES큐브 매각에 나선 가운데, 지난해 11월 발행키로 한 200억원어치 전환사채(CB)가 매각 성사를 이끌 '히든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CB의 보통주 전환가격이 액면가에 불과해 원매자가 양수할 경우 인수가액 대비 3분의 1 수준에 추가 지분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ES큐브 이사회는 지난해 11월 30일 HB투자파트너스(당시 ES투자파트너스)를 대상으로 6회차 CB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운영자금으로 2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이다.
HB투자파트너스는 양은혁 한빛대부 회장과 배우자 이서연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현재 ES큐브 최대주주인 '지에프금융산업제1호주식회사(SPC·이하 지에프1호)'를 운용하는 업무집행사원(GP)이기도 하다. 사실상 한빛대부 계열사에 CB를 발행하는 셈이다.
ES큐브는 CB 전환가액을 액면가(5000원)로 고정했다. 시가 변동에 따른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조항은 없다. 올 들어 두차례 무산되긴 했지만, 주식매매계약(SPA) 당시 주당 인수가액(1만4885원) 보다 3분의 1 가량 저렴한 가격이다. CB 권면총액은 200억원으로 향후 보통주 전환 가능 물량이 400만주(22.8%)에 달한다.
해당 CB가 이번 딜의 '히든카드'로 거론되는 건 이 같은 발행조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보통주 전환 가능 물량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데다, 원매자 입장에선 CB를 사들여 액면가 수준에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선 한빛대부가 지에프1호 보유 지분과 경영권(650억원), CB 양도권(200억원)을 묶어 850억원 규모의 '패키지딜'을 제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ES큐브 원매자가 경영권과 CB를 한꺼번에 인수할 경우 최대 55%의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다. 주식매매계약을 통해 32.2%, 인수한 CB를 전량 보통주로 전환해 22.8%의 지분을 획득할 수 있다. 총 850억원을 들여 ES큐브 지분 과반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한빛대부가 이번 ES큐브 인수합병(M&A) 딜에서 6회차 CB 양도를 포함한 매각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안다"며 "액면가 수준에 CB를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을 적극 활용해 매각 성사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CB 인수대금 납입이 수개월째 미뤄지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6회차 CB를 인수하기로 한 HB투자파트너스는 올 들어 두 차례나 인수대금 납입일을 연기했다. 당초 올 3월 31일 인수대금을 납입하기로 했으나 6월 30일, 9월 30일 순으로 일정을 미뤘다. 최근 연달아 무산된 ES큐브 매각 계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수합병 '히든카드'로서 6회차 CB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ES큐브가 속한 코스닥 시장의 경우 CB 납입일을 6개월 이상 지연할 경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돼 벌점을 받는다. 6회차 CB의 최초 납입일이 지난 3월 31일임을 고려하면, 오는 9월 30일 전에 인수대금 납입이 이뤄져야 벌점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CB 발행을 철회할 경우에는 '공시번복' 사유로 벌점을 받는다. 벌점 부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예정대로 HB투자파트너스가 CB를 인수하는 것 뿐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순수하게 운영자금 목적으로만 CB를 발행했다면 9개월 가까이 자금납입을 연기할 이유가 없다"며 "매각 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수자 측에 가격 메리트를 주기 위한 방안으로 CB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ES큐브가 6회차 CB 발행을 결의한 2021년 11월 30일은 금융감독원이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시행하기 직전이다. 이 개정안은 같은 해 12월 1일 이후 이사회에서 발행 결의한 CB부터 적용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개정안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담겨있다.
하나는 최대주주에게 부여하는 콜옵션(매도청구권) 한도를 CB 발행 당시 보유 지분율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ES큐브가 6회차 CB의 콜옵션 한도를 70%로 설정할 수 있었던 건 이 조항을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ES큐브가 개정안 시행 후 CB를 발행했다면, 콜옵션을 행사해 가져갈 수 있는 물량은 발행금액의 32.2%에 불과하게 된다.
또 하나는 '상향 리픽싱' 도입이다. 이는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되는 CB를 사모 발행할 경우 향후 시가가 올랐을 때 전환가액을 상향 조정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ES큐브는 개정안 시행 전 '막차'를 탄 덕분에 두 가지 규제를 피해 CB를 발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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