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기에 잠식당한 철강
투기세력 시장 왜곡…적극적 대응책 마련 시급
이 기사는 2021년 06월 28일 08시 25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유범종 기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경제 이론이 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1776년 발표한 저서 국부론에 소개된 이론으로 공급과 수요에 의한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적절한 시장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 이론은 투기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산업 전반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투기세력은 실질 수급보다는 심리를 조장해 비정상적인 시장가격을 만들고 나아가 안정적인 산업구조까지 훼손하는 악질로 자리잡았다.


최근 국내 철강시장을 보면 이러한 투기세력의 폐해가 몸소 느껴진다. 특히 대표적인 건설강재인 철근의 경우 투기세력들의 득세로 안정적인 공급과 가격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듯 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연초부터 전세계적으로 급속한 경기회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국마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고 이는 철근 수요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와 함께 원자재 대란도 함께 발생하며 국내 철근 제조기업들은 원활한 철근 생산에 제약이 따랐다. 결국 국내 철근 수급불균형이 심화됐고 시장에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커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국내 일부 철근 유통업체들 즉 투기세력들은 철근시장 혼란을 틈타 철근 사재기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마치 주식처럼 단기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철근을 모아 창고에 꽁꽁 감춰두고 가격이 더 오를 때까지 시장에 팔지 않는 행태를 이어갔다. 이는 안정적인 철근 공급 균형을 깨트림과 동시에 비정상적인 시장가격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근 10년간 최대 톤당 20만원 안팎에서 움직였던 국내 철근 유통가격은 작년 12월 톤당 67만원 남짓에서 올해 5월 말 톤당 140만원까지 뛰었다. 불과 5개월 만에 두 배 이상 가격이 오른 것이다. 또 이달 들어서는 톤당 120만원 수준으로 다시 떨어지는 등 가격 널뛰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 불확실성이 워낙 커지다 보니 이제는 당장 내일 가격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여파는 수요산업인 건설에까지 미치고 있다. 현재 국내 건설기업들은 철근을 구하지 못해 공사현장을 강제로 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고 설사 어렵게 철근을 구한다 해도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가격에 공사원가를 맞추기는커녕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건설공사 차질은 결국 말단에 있는 개별 소비자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도 뒤늦게 나섰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다양한 관계부처 회의를 가지면서 사재기 등 철강시장 교란행위를 단속하고 철근 생산업체들의 증산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 시점이 이미 시장 혼란이 커질 대로 커진 이후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철강은 특성상 대부분의 수요산업에 두루 쓰이는 중간재로 산업의 쌀로 불린다. 철강시장이 훼손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산업 전반으로 퍼질 수 밖에 없다. 철강이 더 이상 투기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인 시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와 철강업계 모두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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