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상균 IB부장]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은 붕괴 직전이었다. 뜬금없이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발표한 것이 단초가 됐다. 

증권사들이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선 개발사업의 PF를 활발히 유동화하는 상황에서 시장에는 메가톤급 충격이 이어졌다. 지자체가 보증을 선 ABCP도 부도를 맞는 와중에 이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일반 사업장의 ABCP는 설 자리가 없었다. 시장은 돈맥경화 상태에 빠졌다.

더욱 절망스러운 점은 감독당국의 태도였다. 금융감독원장과 한국은행장은 그동안 부동산 호황을 등에 업고 수천억원을 번 증권사가 이 정도 위기로 흔들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조했다. 그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감독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와중에 시장은 초토화됐다. 국내 유수의 우량기업들도 자금조달이 되지 않았고 부동산PF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사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시공능력평가 8위인 롯데건설은 급작스런 자금시장 경색 탓에 그룹 계열사로부터 수천억원을 지원받았다. 태영건설 역시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다. 

여기에 호황을 지속하던 아파트 분양시장마저 고꾸라진데 이어, 부동산PF 비중이 높은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로 진화할 조짐을 보였다. 잘못된 정책 대응이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유발시키는지를 인지한 감독당국은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된 금융당국의 태도는 한 달 뒤인 11월 초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연기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 한국 크레딧 마켓에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문의가 잇따랐고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인식한 감독당국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해당 업체에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흥국생명은 당초 입장을 바꿔 영구채 콜옵션 행사를 결정했다. 여기서 나아가 11월 말 감독당국은 1조8000억원 규모의 '중소형 증권사 부동산 PF ABCP 매입 프로그램(제2채권시장안정펀드)'을 가동해 쑥대밭이 된 부동산PF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올해 들어 부동산PF는 순조롭게 차환이 이뤄지고 있고 자금경색에 시달리던 건설사들도 회사채 발행에 나설 정도로 상황이 호전됐다. PF 시장이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둔촌주공도 미분양 우려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시장에서는 적어도 유동성 위기가 신용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막았다는 안도감이 자리 잡았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엄혹한 겨울이 닥칠 것이라는 극한의 공포가 있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최악의 상황은 막은 것이다.

시장에 난 불을 먼 산 보듯 했던 감독당국을 변화시킨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진태 지사가 불러일으킨 레고랜드발 사태였다. 자본시장의 몰이해가 나비효과처럼 자본시장의 근간을 무너뜨릴 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의 백신주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 됐다. 

당시에는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유동성 위기 탓에 김 지사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기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태 형, 고마워. 형이 의도했던 아니던, 덕분에 우리는 강해졌고 위기를 넘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