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수빈 기자] 이른 새벽 백화점 밖 길게 늘어선 줄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명품매장으로 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팬데믹의 시름 속에서도 한국은 새로운 관습을 발달시켰다"며 "새벽 5시부터 백화점 밖에서 긴 줄을 서 샤넬 가방을 사는 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명품 수요가 늘어난 건 명품이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재테크 수단 활용되기 시작하면서다.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탓에 새 상품에 프리미엄을 붙여서 판매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제품은 중고임에도 새 것보다 비싸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난 명품 수요는 머스트잇과 트렌비, 발란 등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편의성과 접근성을 무기로 삼은 이들은 빠르게 백화점 위주의 명품 시장에 침투했다. 발란은 지난해 전년 대비 115% 증가한 매출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트렌비는 27%, 머스트잇은 34%로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 경기침체와 함께 명품 플랫폼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발란은 지난 4월 기업가치를 최대 8000억원으로 책정해 1000억원의 이상의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250억원을 조달하는데 그쳤다. 트렌비는 연복리 3%의 다소 불리한 조건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시장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자금 조달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문제는 명품 플랫폼이 내년에도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보여주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금리상승에 따른 경기둔화로 명품 소비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고가·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졌지만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외부 활동이 증가하면서 성장이 정체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시장이 둔화된다고 해서 기업이 무조건 위기에 처하는 건 아니다. 보통 시장은 성장과 정체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명품 플랫폼의 상황은 다르다. 자금 조달을 위해선 성장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이를 인정받지 못하면 향후 투자 유치가 어려워져 돈줄이 마르게 된다. 성장성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명품 플랫폼사들은 컬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컬리는 새벽 배송이라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작년 말 상장 전 투자유치(Pre-IPO)로 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매출은 늘었지만 그만큼 적자 폭도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뷰티컬리(화장품) 등으로 새 먹거리 찾기에 분주하지만 시장 기대감은 크지 않다.

현재 명품 플랫폼들에게서도 뚜렷한 미래 먹거리를 찾아보긴 어렵다. 트렌비는 정품 감정 역량을 살려 '한국정품감정센터'를 설립했고 발란은 B2B(기업간거래) 서비스를 '발란 커넥트'로 분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러한 사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다.

국내에선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게 되면 명품에 집중됐던 수요가 더욱 빠르게 서비스 시장으로 퍼질 수 있다. 외부 활동이 급증하면서 소비가 외식, 여행 등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명품 플랫폼 기업들은 돈줄이 완전히 마르기 전 지속적인 성장을 책임질 먹거리 확보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