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인공지능(AI) 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글로벌 반도체주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 16일까지 8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 하락 기록을 세웠다.
이 같은 금융시장의 불안에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2028년까지 수요가 공급을 웃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장기 실적 전망이 유지되는 가운데 미국 중간선거 이후 불확실성까지 완화된다면 급락한 반도체주가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83% 하락한 1만1137.29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7일부터 8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2008년 10월 이후 가장 긴 하락 행진을 기록했다. 지난 6일 종가와 비교하면 8거래일 동안 약 15.7% 떨어졌다. 특히 16일에는 지수 구성종목 30개가 모두 하락했다. 마이크론(-5.63%), AMD(-5.95%), 인텔(-5.79%)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매도세가 집중됐다.
다행히 주말을 지난 19일에는 전 거래일 대비 1.61% 오른 1만1316.34에 마감하며 연속 하락세를 멈췄다.
미국 증시 전반에서도 지난주 기술주 약세가 두드러졌다. 16일 나스닥종합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14%,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09% 하락했다.
국내 증시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12~16일 코스피는 직전주 마지막 거래일 종가 대비 14.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7.7%, 24.3% 떨어지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피는 지난 16일 전 거래일 대비 2.05% 상승하며 8거래일 만에 반등했지만 주중 누적된 낙폭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말을 지낸 19일 국내 증시는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 넘게 하락 출발했으나 장중 상승 전환해 1.76% 오른 5768.01에 마감했다.
◆AI 투자금 확보에 경고등…자금조달 우려 확산
이번 반도체주 급락의 배경에는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반도체 구매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면서 투자 규모뿐 아니라 자금조달 능력과 수익성까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행사에서 자본 확보가 AI 성장의 가장 큰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도 지난 14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발표에서 "50년 금융 경력 중 처음으로 실질적인 자본 부족을 목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동시에 자금 수요를 늘리면서 자본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호주 AI 데이터센터 기업 퍼머스(Firmus)는 지난 9일(현지시간) 투자자 수요 부진으로 약 50억달러(6조7000억원)를 조달하려던 기업공개(IPO)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추진했던 상장 기업가치는 약 306억달러(40조6000억원)로, 불과 두 달 전 평가액의 약 3배에 달했다. 높은 기업가치와 대규모 투자 부담 등에 대한 우려가 투자자들의 참여를 위축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CoreWeave)도 지난 16일(현지시간) 주가가 11.91% 급락하며 당일 장을 마감했다. 그리고 주말을 지난 첫날 장인 19일 종가가 1.89% 하락한 60.23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 6월 발행한 회사채의 수익률이 당시 약 9.675%에서 최근 15% 수준까지 상승하는 등 자금조달 부담에 대한 우려가 부각됐다.
◆마이크론·ASML·TSMC는 공급 부족 전망…2028년까지 수요 견조
금융시장의 불안과 달리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중장기 수요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실적발표에서 2027~2028년 메모리·스토리지 수급이 올해보다 더욱 빠듯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신규 생산시설을 건설하더라도 실제 공급을 확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역시 지난 14일(현지시간) 현재 계획한 생산능력으로는 2027~2028년 고객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부 고객사는 이미 2029~2030년 장비 발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도 고객사의 금융·전력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수요가 공급을 웃돌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발표한 3분기 매출은 1조4942억 대만달러(61조2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0.9% 증가했다. 올해 설비투자 예산도 600억~640억달러(79조7000억~85조원) 수준을 유지했다.
◆급락한 반도체주, 중간선거 이후 반등 가능성은
최근 주가 급락을 투자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도 나온다. AI 투자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로 주가는 하락했지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유지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투자할 수 있는 구간이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19일 발간한 '자본 부족에 흔들린 반도체, 중장기 실적을 보자' 보고서에서 "2027~2028년 이익 전망이 유지되는 가운데 주가가 하락한다면 중장기 투자 매력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 증시가 강세를 보였다는 과거 통계도 참고할 만하다. 글로벌 금융서비스 기업 찰스슈왑이 지난 8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1974년 이후 13차례 미국 중간선거 직후 6개월 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모두 상승했다. 평균 상승률은 12.4%에 달했다. 선거 직후 3개월을 기준으로도 13차례 중 11차례 상승했으며 평균 상승률은 5.7%였다.
찰스슈왑은 중간선거 이전에는 정치·정책 불확실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지만 선거 이후에는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면서 투자심리가 개선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도 "단기적인 매도 압력이 완화되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도 낮아진다면 시장의 관심이 다시 기업의 실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과거 중간선거 이후 증시가 강세를 보였다고 해서 올해도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반도체 업종의 반등 여부는 중장기 수요 전망이 실제 실적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 연구원은 "단기적인 자금조달 부담과 중장기 수요를 구분하되, 실제 발주가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업계에도 고객사들의 실제 투자 집행 여부가 중요하다. AI 고객사들이 자금조달 부담에도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하는지에 따라 향후 반도체 주문과 실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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