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민승기 기자] 아워홈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범LG가 구미현 전 아워홈 회장이 코스닥 상장사 인수에 속도를 내면서 ‘큰 손’으로 떠올랐다. 특히 직접 경영권을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녀들이 지분을 보유한 가족법인까지 투자에 가세하고 있다. 석 달 사이 경영권 인수 계약을 맺은 기업만 두 곳이다. 최근에는 장남과 투자조합 4곳이 참여하는 또 다른 상장사 인수 계약도 체결했다. 자녀들이 추진한 별도의 상장사 투자는 거래정지 이후 무산됐지만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투자 대상 기업들이 수익성 부진이나 재무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구 전 회장 일가의 투자 목적과 향후 경영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구 전 회장은 범LG가인 고 구자학 아워홈 창업주의 1남3녀 중 장녀다. 2024년 오빠 구본성 전 부회장과 손잡고 동생 구지은 전 부회장의 연임을 막은 뒤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고, 취임 이튿날 회사 매각을 공식화했다.
이듬해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구본성·구미현 남매와 구 전 회장의 두 자녀가 보유한 아워홈 지분 58.62%를 8695억원에 사들였다. 같은 단가로 계산하면 구 전 회장 몫(19.28%)은 세전 약 2860억원, 두 자녀 몫(1.89%)은 28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구 전 회장과 자녀들이 아워홈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만 3100억원을 웃도는 셈이다.
아워홈에서 손을 뗀 구 전 회장이 처음 선택한 곳은 화장품 제조사 본느다. 지난 7월 임성기 전 대표 등 5인으로부터 지분 37.7%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인수가는 당초 140억원에서 9월 126억원으로 낮아졌고 최대주주 변경은 지난 12일 완료됐다. 인수자금은 전액 자기자금으로 댔고 양수 주식에 대한 의무보유 약정은 걸지 않았다.
구 전 회장은 경영권 인수와 동시에 가족법인을 통한 추가 지분 확보에도 나섰다. 본느는 계약 당일 전환사채(CB) 200억원 발행을 결의했고, 구 전 회장 개인과 벤타셀렉트가 100억원씩 나눠 인수했다. 벤타셀렉트는 구 전 회장의 장남 이석주 씨와 딸 이경아 씨가 지분 44%씩 보유한 법인이다. 특히 벤타셀렉트는 CB 인수자금 100억원을 구 전 회장에게 차입한 것으로 신고했다. 구 전 회장 개인의 자금이 자녀 소유 법인의 상장사 투자로 이어진 구조다.
경영권 장악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본느는 최대주주 몫의 잔금이 지급되기 한 달 전인 9월1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구 전 회장과 남편 이영열 전 아워홈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대표이사도 교체했다. 구주 인수대금 지급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구 전 회장 부부가 경영진에 진입한 셈이다.
향후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일가의 지배력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공시상 구 전 회장의 지분율은 37.7%지만 7월 결의한 유상증자 신주를 반영하면 34%대로 내려간다. 반면 본느가 10억원을 들여 사들인 자사주 5.05%를 소각하고 구 전 회장과 벤타셀렉트가 보유한 CB 200억원(전환가 1396원)을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면 구 전 회장 단독 지분율은 약 44%, 벤타셀렉트를 포함한 일가 지분율은 약 73.5%까지 높아질 수 있다. CB 전환은 내년 8월부터 가능하다.
다만 경영권 이전 과정에서 추진된 자금조달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이어지고 있다. 본느 주주들은 7월 이사회에서 결의된 유상증자와 CB 2건을 상대로 각각 신주발행무효 소송과 전환사채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 측은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성실히 대응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본느에서 개인과 가족법인을 앞세웠다면 씨싸이트 인수에서는 장남과 투자조합 4곳이 함께 등장했다. 구 전 회장 측은 지난달 23일 티에스인베스트먼트 측 투자조합과 김상기 전 대표로부터 의류 수출업체 씨싸이트 지분 74.94%를 504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
전체 인수금액 가운데 구 전 회장과 장남 이석주 씨가 부담하는 금액은 300억원이다. 구 전 회장이 200억원을 들여 지분 29.74%를, 이씨가 100억원을 투입해 14.87%를 확보한다. 두 사람이 직접 취득하는 지분은 44.61%다.
나머지 30.33%는 '글로벌케이뷰티투자1·2호', '글로벌케이패션투자1·2호' 등 투자조합 4곳이 나눠 갖는다. 각 조합의 취득 지분율은 7.58%로 동일하며, 인수금액도 각각 51억원이다. 이 가운데 2곳은 출자자가 한 명뿐인 조합이다. 4개 조합 모두 개별 지분율이 주요주주 기준인 10%를 밑돌고 있으며, 구 전 회장의 대량보유보고서에도 특별관계자로 신고되지 않았다. 투자조합의 실질 출자자와 구 전 회장 일가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씨싸이트 인수가 예정대로 마무리되면 구 전 회장 일가는 본느에 이어 두 번째 코스닥 상장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잔금 453억6000만원은 다음 달 5일 지급될 예정이며, 이튿날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교체될 예정이다.
자녀들의 상장사 투자도 본느와 씨싸이트에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 제작사 빅텐츠(옛 캔버스엔)에서는 벤타셀렉트가 6회차 CB 100억원을, 이경아 씨가 8회차 CB 30억원을 인수해 총 13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빅텐츠 투자는 실제 자금 납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빅텐츠는 유상증자와 CB 납입 일정을 6개월 이상 반복해서 미룬 탓에 공시 벌점이 누적됐고 지난 8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됐다. 구 전 회장 자녀 측이 인수하기로 한 CB의 납입 지연 역시 불성실공시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일주일 뒤인 15일 빅텐츠는 '발행대상자의 대금 미납'을 이유로 두 CB의 발행 결정을 철회했다.
구 전 회장 일가가 투자에 나선 세 기업은 모두 수익성 측면에서 과제를 안고 있다. 본느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1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0% 줄었고 4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자회사 관련 무형자산 70억원을 손상 처리하면서 순손실은 111억원으로 불어났고 부채비율은 반년 새 56%에서 99%로 뛰었다.
씨싸이트는 지난해 매출 1697억원에 영업이익 1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0.09%로 매출 1000원을 올려도 영업이익은 1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빅텐츠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고, 상반기 말 현금성자산은 26억원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구 전 회장 측에 상장사 인수 목적과 투자조합의 관계, 추가 인수 계획 등을 묻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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