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연 인턴기자]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2만원.”
1991년 발표된 민중가요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첫 가사다. 노랫말을 쓴 조재형은 당시 택시기사였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서울과 평양 사이를 약 176㎞로 보고 1990년 당시 택시 미터기로 계산하니 약 2만3000원이 나와 가사에 2만원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택시요금이 오르면서 1994년 무렵부터는 가사 속 금액도 5만원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11년 전인 1980년 5월. 영화 ‘택시운전사’의 서울 개인택시 기사 김만섭(송강호 분) 앞에는 그보다 더 큰 금액이 제시된다.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광주까지 다녀오면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밀린 생활비를 걱정하던 만섭에게는 놓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다른 기사가 맡기로 한 손님을 먼저 찾아가 태운 그는 광주로 향한다.
1980년의 10만원. 얼마나 큰돈이었을까. 왕복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하는 택시기사에게도 그만큼 남는 장사였을까. 더욱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면 말이다.
◆1980년 10만원, 지금 물가로는 약 57만원
1980년의 10만원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가장 직관적인 기준은 소비자물가지수(CPI)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구가 일상생활에서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 일정 금액으로 살 수 있었던 상품과 서비스를 지금 사려면 얼마가 필요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2020년을 100으로 놓았을 때 1980년 연평균 소비자물가지수는 20.965였다. 지난 2일 발표된 올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20.43이다. 1980년과 비교하면 약 5.74배 높아졌다.
이를 영화 속 10만원에 적용하면 약 57만4000원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구매력만 기준으로 보면 1980년 10만원은 현재 60만원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인 셈이다.
◆ 당시 월급의 68%…현재 임금으로는 약 295만원
소득과 비교하면 10만원의 무게는 더 커진다.
정부가 발간한 ‘한국의 사회지표 1980’에 따르면 1979년 전 직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4만6442원이었다. 직종별로는 판매직 11만9560원, 서비스직 10만8425원, 생산직 11만1476원 수준이었다. 운수·창고·통신업의 월평균 임금은 16만2520원이었다.
10만원은 전 직종 평균 월급의 약 68.3%에 해당한다. 한 번의 광주 왕복으로 평균적인 근로자가 한 달 동안 벌던 돈의 3분의 2에 가까운 금액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같은 비중을 현재 임금에 단순 적용해보자.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6년 8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7월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431만6000원이었다. 여기에 68.3%를 적용하면 약 294만8000원이다.
물가로 환산한 57만원보다 다섯 배 넘게 큰 금액이다. 다른 기사의 손님까지 가로채 광주행을 택할 만큼 당시 10만원이 매력적인 돈이었다는 점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광주 왕복 10만원…실제 택시요금과 비교하면
그렇다면 만섭에게 제시된 10만원, 당시 택시요금으로 따져도 큰 금액이었을까. 서울에서 광주까지 택시를 타면 실제 얼마가 나왔을까.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에 따르면 1980년 5월 당시 서울 택시요금은 2㎞까지 500원, 이후 400m마다 50원이 붙는 구조였다. 시간에 따라 요금이 함께 올라가는 시간·거리 병산제는 1985년부터 도입돼 당시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도로공사의 영업소 간 통행거리 자료를 기준으로 서울~광주 고속도로 주행거리를 약 293㎞로 놓고 당시 요금을 단순 적용해보자. 편도 약 3만6900원, 왕복으로는 약 7만3800원이다.
택시기사의 입장에서 계산하면 느낌이 조금 달라진다. 정상적인 광주 왕복 운행만으로도 이미 7만원이 넘는 요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 도로 여건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호남고속도로는 1973년 개통됐지만 당시에는 왕복 2차로였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대전~광주 구간이 왕복 4차로로 확장된 것은 1986년이다. 확장 전 대전~광주 운행시간만 약 2시간50분이 걸렸다.
도로 선형도 이후 지속적으로 개량된 만큼 1980년 실제 서울~광주 주행거리는 현재와 달랐고 실제 운행 거리는 더 길었다. 실제 거리가 더 길었다면 미터요금도 7만3800원보다 높아진다.
연료비와 차량 소모까지 고려하면 정상 운임과 별도로 붙은 웃돈은 더 줄어든다.
◆문제는 목적지가 1980년 5월의 광주였다는 것
더군다나 만섭이 향한 곳이 평범한 장거리 목적지가 아니었다. 1980년 5월의 광주였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계엄군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학생과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21일에는 전남도청 앞 일대에서 시민들을 향한 집단발포까지 이뤄졌다.
영화 속 만섭의 모티브가 된 서울 택시기사 김사복은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를 오갔다.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진압과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했고, 그 영상은 독일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5·18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기록이었다.
영화 속 만섭 역시 광주에서 계엄군의 폭력과 시민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집에 혼자 있을 딸을 걱정해 서울로 향하지만,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촬영한 영상을 광주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못한다. 결국 만섭은 차를 돌려 다시 광주로 향한다.
만섭을 처음 광주로 향하게 한 것은 10만원이었다. 그러나 다시 광주로 돌아가게 한 것은 더 이상 10만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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