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이승연 인턴기자] 미국이 중국산 첨단 로봇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내년부터 국산 휴머노이드 구매와 현장 실증에 본격적으로 예산을 투입한다. 그동안 연구개발(R&D)에 집중됐던 국내 로봇 지원 정책이 정부가 직접 초기 수요를 만들어주는 구매·보급·실증 지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중국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휴머노이드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국내 완제품과 핵심부품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7일 IBK투자증권이 발간한 ‘휴머노이드 탈중국 공급망 구축의 수혜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7월 연방통신위원회(FCC)를 통해 외국산 첨단 로봇을 '커버드 리스트(Covered List)'에 편입하고 신규 장비 인증을 제한했다. 외국산 여부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규정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미국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부품 원가 비중 기준도 2028년까지 65%, 2029년 이후 75%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까지 휴머노이드 생태계는 가격 경쟁력과 대규모 생산 인프라를 갖춘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하지만 미국의 규제 강화로 북미 로봇 기업들의 공급망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IBK투자증권은 골드만삭스 전망을 인용해 한국 공급망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휴머노이드 생산량이 2035년 약 41만대에 달하고 글로벌 출하량의 30%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첫 고객 된다…구매·실증으로 초기 시장 조성
미국발 공급망 재편이 국내 기업에 외부 기회를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초기 시장을 직접 조성하는 방식으로 내부 수요를 뒷받침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2027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예산안에는 내년 로봇 지원을 기존 연구개발(R&D)뿐 아니라 구매·보급·실증까지 범위를 넓혔다. 산업통상부는 K-로봇산업 생태계 고도화 R&D에 370억원, 지능형 로봇 보급·확산에 807억원, 로봇 데이터 팩토리에 450억원, 국산 휴머노이드 공공보급에 300억원을 편성했다. 지능형 로봇 보급 예산은 올해 567억원에서 내년 807억원으로 42.3% 늘어난다.
특히 국산 휴머노이드 200대를 공과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보급하는 사업이 새로 추진된다. 단순히 시제품 개발비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가 첫 번째 고객이 돼 초기 수요와 레퍼런스 확보를 돕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쌓은 납품·활용 실적이 이후 민간과 해외시장 진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핵심부품 국산화도 지원한다. 신규 편성된 K-로봇산업 생태계 고도화 사업은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센서, 로봇손 등 핵심부품 개발과 국내 공급망 구축을 지원한다. 휴머노이드에는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한 다수의 관절과 구동부가 들어가는 만큼 양산 규모가 커질수록 액추에이터 등 핵심부품의 안정적인 조달 능력이 중요해진다.
로봇이 학습할 데이터와 AI 기반을 만드는 예산도 대폭 신설됐다. 산업부는 로봇 데이터 팩토리에 450억원을 투입해 10대 업종별 로봇 공정 데이터셋 50개를 구축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피지컬 AI 트레이닝센터 구축 400억원, 피지컬 AI 핵심기술개발 R&D 550억원, 우정사업본부 연계 물류 실증 260억원, NEXT 휴머노이드 챌린지 선도기술개발 175억원 등을 요청했다. 산업부가 로봇 구매·보급과 부품 공급망 구축에 무게를 뒀다면 과기부는 범용 AI 모델과 학습데이터, 시뮬레이션 플랫폼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기업도 채비…액추에이터 증설·비중국 공급망 진입
국내 로봇 전문기업들도 시장 확대에 대비해 생산능력과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이날 신한투자증권이 발간한 ‘액추에이터부터 완제품까지, K-로봇의 완전체’ 보고서에 따르면 로보티즈는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 통신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스마트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을 자체 개발·생산하고 있다. 액추에이터뿐 아니라 양팔 작업형 휴머노이드 'AI Worker'와 로봇핸드 등 완제품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로보티즈는 올해 초 우즈베키스탄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액추에이터 공장을 신설한 데 이어 4분기 2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추가할 계획이다.
비중국 공급망을 겨냥한 움직임은 기존 로봇 전문기업 밖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디케이티는 연성회로기판(FPCB)과 충전 모듈, 배터리 제어 모듈 등을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공급망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의 자율주행 플랫폼 'MobED'에 무선충전 모듈을 기술검증(PoC) 형태로 납품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미국 조지아 생산시설 가동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러한 국내 로봇 산업의 흐름에 대해 한재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배터리와 반도체, 모터 등 다양한 부품이 결합된 제품"이라며 "국내 로봇 부품·소재·장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아직 충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휴머노이드 시장 자체가 초기 단계인 만큼 지금부터 관련 부품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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