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KB금융그룹이 인도네시아 중간지주사 초대 사장으로 권봉중 KB국민은행 전무를 발탁했다. 주력 계열사인 KB뱅크 인도네시아(KBI)가 현지인 은행장 체제로 운영되는 가운데 중간지주 수장에는 한국 본사 사정에 밝은 재무·IR 전문가를 배치했다. 현지 영업은 현지인 경영진에게 맡기면서 그룹 차원의 전략과 자본 배분, 계열사 간 이해관계 조율은 본사 출신 중량급 인사가 담당하는 '투트랙' 체제를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권 CEO는 현재 KBI 본사로 출근하며 인도네시아 중간지주 출범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KB금융은 권 CEO의 인사 소식을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으로부터 중간지주사 설립계획을 승인받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공식 취임 발표에 앞서 조직 정비와 지분 이전 등 후속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CEO의 발탁이 주목받는 것은 KBI가 이미 현지인 은행장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KBI는 지난해 5월 쿠나르디 다르마 리에 전 DBS 부행장을 신임 행장으로 선임했다. 현지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를 전면에 세워 영업 경쟁력과 OJK 등 현지 당국과의 소통을 강화하려는 취지였다.
반면 새롭게 출범하는 중간지주는 개별 금융사의 영업보다 그룹 차원의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데 무게를 두게 된다. 이에 따라 현지인 행장이 KBI의 경영과 현지 영업을 책임지고, 본사 출신 중간지주 CEO가 그룹 차원의 인도네시아 사업을 조율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KB금융은 지난달 5일 OJK로부터 현지 금융지주사 설립계획을 승인받았다. 별도의 지주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대신 현지 IT 법인인 KB데이타시스템(PT KB DATA SYSTEMS INDONESIA)을 비운영형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새 중간지주사는 국민은행 본사가 보유한 KBI 지분 66.88%를 인수하게 된다. 지배구조 개편은 승인일로부터 1년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OJK의 금융복합기업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OJK는 2024년 12월 '금융 복합기업 및 금융지주회사'에 관한 규정(POJK 30/2024)을 시행했다. 총자산 100조루피아(IDR) 이상이면서 서로 다른 금융업종의 금융회사 2곳 이상을 보유한 금융복합기업 등을 대상으로 금융지주회사 설립·지정을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이에 KB금융은 지난해 6월 OJK에 중간지주 설립안을 처음 제출했다. 당초 늦어도 올해 초 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OJK의 수정·보완 요구가 이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KB금융은 기존 법인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손질해 올해 수정안을 다시 제출했고, 지난달 최종 승인을 받았다.
금융권에서는 권 CEO가 지난해 말 국민은행 글로벌사업그룹으로 이동한 것도 인도네시아 중간지주 출범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1969년생인 권 CEO는 한림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KB금융 회계부 차장과 IR부 부장 등을 거쳐 2021년 상무로 승진해 IR본부 임원을 맡았다. 2023년 전무 승진과 함께 확대 재편된 IR본부장에 올랐으며,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 국민은행 글로벌사업그룹 소속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 CEO는 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IR 전문가로 꼽힌다. 회계부서 근무 경험에 더해 오랜 기간 IR 업무를 담당하며 그룹의 재무구조와 자본정책, 사업 포트폴리오를 두루 다뤄왔다. 개별 금융사의 영업보다는 그룹 전체 관점에서 자본을 배분하고 여러 계열사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중간지주 수장에 적합한 경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배구조 개편이 완료되면 비운영형 중간지주는 KBI를 비롯한 KB금융의 인도네시아 금융계열사를 묶어 관리·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KB금융은 현지에서 은행뿐 아니라 증권, 캐피탈, 카드, 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개별 법인의 경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룹 차원의 사업전략과 자본 배분, 계열사 간 시너지를 관리하는 것이 중간지주의 핵심 역할이 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자산과 사업 규모를 감안하면 인도네시아 사업의 중심축은 KBI다. 권 CEO 역시 개별 금융사의 영업을 직접 지휘하기보다는 한국 본사와 KBI를 비롯한 현지 계열사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인도네시아 사업 전반의 전략과 자본 관리 방향을 조율하는 데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권 CEO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 역시는 KBI의 안정적인 정상화다.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 인수 이후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1조5000억원을 웃도는 자금을 투입했다. 부코핀은행 시절부터 쌓여온 대규모 부실 탓에 국내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자본 투입과 투자 성과를 둘러싼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KBI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현지 회계 기준으로 연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룹 관점에서 정상화가 마무리됐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국민은행 연결 기준에서는 KBI의 손실이 여전히 반영되고 있어서다. 현지에서 만들어낸 흑자를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로 안착시키고 그룹 실적에도 기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다.
결국 권 CEO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은 '현지화'와 '그룹 관리' 사이에서 균형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현지인 경영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살리면서 그룹 차원의 자본 관리와 계열사 간 시너지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KBI가 현지 기준 흑자전환을 넘어 그룹 실적에도 안정적으로 기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초대 중간지주 수장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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