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삼성생명보험과 삼성화재보험이 8조원의 자본을 들여 일본 보험금융사들이 먼저 걸었던 해외 인수합병(M&A) 경로를 따라 나섰다. 재원의 절반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배당으로 충전해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생명보험사는 선진국의 퇴직연금·자산운용 플랫폼에 전략적 지분을 투자하고, 손해보험사는 특종보험사를 인수해 해외 영업망과 보험 인수 역량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국내 시장은 저출생과 경쟁사 포화로 산업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태라 대규모 자본을 앞세워 미국과 유럽 선진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을 계획이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미국 프린시플파이낸셜그룹(PFG) 지분 10%대 중반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예상 투자금액은 5조~6조원이다. 삼성화재는 영국 특종보험사 캐노피우스의 경영권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거래 규모는 2조원대 중후반으로 거론된다. 두 거래가 모두 성사되면 삼성 금융계열사가 해외 M&A에 투입하는 금액만 최대 8조원에 달한다.
◆ 삼성생명 美퇴직연금 강자 최대주주로…닛폰생명 전략
삼성생명의 PFG 투자는 일본 생명보험사들이 해외 연금·자산운용사에 전략적 소수 지분을 투자해온 방식과 닮았다. 다이이치생명은 지난해 영국 자산운용사 M&G 지분 약 15%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양사는 자산운용과 생명보험 분야에서 장기 제휴를 맺고 향후 5년간 M&G에 최소 60억달러(약 8조2000억원)의 자금을 유입시키기로 했다. 다이이치생명에는 같은 기간 최소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의 신규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닛폰생명도 미국 생명보험·퇴직연금회사 코어브리지파이낸셜 지분 20%를 약 38억달러(약 5조1700억원)에 인수했다. 경영권을 통째로 가져오기보다 주요 주주로 참여해 현지 회사의 경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사업 기반과 자산운용 역량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인수 부담을 낮추면서 해외시장의 수익을 연결 실적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PFG는 미국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인 401(k) 시장의 주요 사업자다. 운용자산은 7800억달러(약 1062조2000억원)를 웃돈다. 삼성생명이 지분 10%대 중반을 확보하면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를 제치고 최대주주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단순한 지분법 이익뿐 아니라 PFG의 퇴직연금 관리 역량과 북미 대체투자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국내 퇴직연금 사업에 미국의 운용 체계를 접목하거나 삼성생명 일반계정 자금을 PFG에 위탁하는 협력도 가능하다.
다만 이를 아폴로와 아테네의 보험 연계 사모대출 모델과 동일하게 보기는 어렵다. 아폴로는 아테네의 장기 보험자금을 활용해 투자적격 사모대출과 자산기반금융(ABF) 자산을 직접 발굴하고 운용하는 구조다. 현재 삼성생명의 구상은 보험자금을 대체투자 운용사에 공급하는 모델보다 현지 연금·자산운용 플랫폼의 전략적 주주가 되는 데 가깝다. 향후 이사회 진입과 자산운용 위탁, 공동상품 개발이 뒤따를 지가 관건이다.
◆ 삼성화재 英특수보험사 경영권 확보…도쿄해상 등이 선구자
삼성화재의 캐노피우스 인수는 일본 손해보험사들의 해외 진출 전략을 빼닮았다. 도쿄해상은 2015년 미국 특종보험사 HCC를 75억달러(약 10조2000억원)에 인수했고, 미쓰이스미토모는 같은 해 영국 로이즈 보험사 암린을 35억파운드(약 6조4000억원)에 품었다. 솜포홀딩스 역시 미국·버뮤다계 특종보험사 엔듀어런스를 63억달러(약 8조6000억원)에 인수해 글로벌 보험 플랫폼으로 키웠다. 내수 손해보험시장에서 확보한 자본을 해외의 고수익 기업보험과 특종보험 사업으로 옮겨 수익원을 다변화한 것이다.
삼성화재는 2019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캐노피우스 지분 40%와 이사회 의석을 확보했다. 일본 보험사들이 대규모 일괄 인수에 나선 것과 달리 수년 동안 실적과 경영진을 검증한 뒤 지배력을 높이는 단계적 방식을 택했다. 캐노피우스는 테러와 납치, 전쟁, 예술품 분실 등 일반 보험사가 다루기 어려운 위험을 인수하는 로이즈 기반 특종보험사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삼성화재는 캐노피우스의 영국·미국·유럽 영업망을 활용해 특종보험과 재보험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결국 두 거래의 성패는 지분 확보 이후 실질적인 사업 결합에 달렸다. 삼성생명은 PFG의 연금·운용 역량을 국내외 사업으로 연결해야 하고, 삼성화재는 캐노피우스의 언더라이팅 경쟁력과 경영진을 유지하면서 삼성의 자본력과 아시아 영업망을 접목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지급여력비율(K-ICS) 하락과 주주환원 여력 감소, 환율 및 현지 보험손실 변동성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국내 대표 기업집단인 삼성의 해외 금융영토 확장은 1980~90년대 일본처럼 국내 무역수지 흑자가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해와 내년 확정된 영업이익이 8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특히 올해 주주배당금으로 총 40조원을 계획했다고 밝혔는데, 대주주인 삼성생명은 이에 따라 올해만 3조4000억원, 삼성화재는 6000억원을 배당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내년에도 배당금을 유지하거나 올릴 경우 삼성 금융사들은 충분한 재원을 기대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서두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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