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KDB생명 매각이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의 임기 내 핵심 경영과제이자 리더십을 가늠할 시험대로 떠올랐다. 특히 산은이 이번 매각 국면에서 추가 자금 지원에 전향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을 두고 '거래 성사'에 방점을 찍겠다는 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산은 내부에서도 이번 매각 추진에 앞서 KDB생명을 정상화하려면 최소 1조원 안팎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것으로 파악된다. 매각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계속 보유하더라도 대규모 자금 투입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 국책은행 자회사라는 특성상 인력·사업구조 재편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도 제약이 있는 만큼, 추가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민간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산은의 부담을 줄이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최근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KDB생명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선정했다. 산은은 KDB생명의 최대주주로 보유 지분율은 99.66%(보통주 1억1622만591주)에 달한다.
이번 매각은 산은의 일곱 번째 도전이다. 산은은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KDB생명의 전신인 금호생명을 인수했다. 이후 2014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매각을 추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반복된 매각 실패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인수자의 자금 부담이 지목된다. KDB생명 지분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인수대금뿐 아니라 인수 이후 취약한 자본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3년 당시 하나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인수 의사를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구주 매입대금과 별개로 인수 후 KDB생명의 자본 건전성 개선에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인수 부담이 커졌다.
이번 매각에서는 산은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자에게 자본확충 부담을 넘기기보다 산은이 매각 전 직접 자금을 투입해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어서다.
산은은 지난해 말 KDB생명에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여기에 향후 3000억~5000억원 수준의 추가 자금을 투입해 한투지주의 자본확충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검토 범위 상단인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한다면 지난해 말 증자분을 포함해 매각을 전후로 KDB생명에 투입되는 자금만 1조원에 달한다.
이 같은 전략 변화의 배경에는 KDB생명을 계속 보유하는 것 역시 적지 않은 비용을 요구한다는 산은 내부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산은은 이번 매각 도전에 앞서 KDB생명의 재무상태와 정상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소 1조원 안팎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산은 입장에서 선택지가 '돈을 더 넣느냐, 넣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KDB생명을 자회사로 계속 보유하면서 최소 1조원가량을 투입해 정상화를 추진할 것인지, 매각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민간 금융그룹에 경영권을 넘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가까운 셈이다.
자본 투입만으로 KDB생명의 근본적인 정상화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민영화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KDB생명의 수익성과 자본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려면 자본확충과 함께 인력과 조직, 사업구조 전반에 대한 효율화가 병행돼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KDB생명이 국책은행인 산은의 자회사로 남아 있는 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는 점이다. 인력 감축이나 사업 재편에 따른 부담으로 경영 효율화가 지연될 경우 수익성 개선 속도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KDB생명의 자체적인 자본 축적을 제한하고 부족한 자본을 산은이 다시 메워야 하는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산은이 자금을 투입해 재무구조를 개선해도 KDB생명 스스로 이익을 쌓을 수 있는 체질로 바꾸지 못하면 추가 자금 지원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산은이 이번에는 추가 유증까지 검토하며 매각 성사에 무게를 싣는 것도 단기적인 회수금액보다 KDB생명을 민간에 넘겨 장기간 이어진 자금 투입의 고리를 끊는 데 방점을 찍은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박 회장의 결단이 주효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회장은 지난해 9월 산은 설립 이래 첫 내부 출신 수장으로 취임했다. 2014년부터 번번이 무산된 KDB생명 매각은 박 회장이 임기 중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장기 현안으로 꼽힌다.
박 회장 재임 중 KDB생명의 민영화를 완수한다면 10년 넘게 이어진 '매각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한투지주와의 거래마저 무산되면 KDB생명 처리 문제는 다시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매각에 성공하더라도 '손실 매각' 논란은 박 회장이 감수해야 할 부담이다. 산은이 KDB생명 인수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자금이 막대한 데다, 이번 거래를 위해 추가 자금까지 투입하면 투자금 회수보다는 민영화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어서다.
산은으로서는 이미 투입한 자금의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매각 조건을 고수하다 거래가 다시 무산될 경우 앞으로 최소 1조원 안팎의 정상화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추가 유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에 매각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산은의 손실을 제한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배경이다.
KDB생명의 취약한 자본 구조도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한다. 지난 1분기 말 KDB생명의 경과조치 전 기본자본비율은 마이너스(-) 25.2%를 기록했다. 내년부터 금융당국의 관리 대상이 되는 경과조치 후 기본자본비율 역시 41.9%로 권고치인 50%를 밑돌았다. 단순 환산 시 KDB생명이 경과조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본자본비율을 50%대로 관리하려면 약 1조650억원의 기본자본 확충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딜의 최종 성패는 한투지주가 KDB생명 세부 실사를 마친 뒤 산은과 구체적인 인수조건을 확정하는 단계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한투지주가 KDB생명 지분 인수대금과 인수 후 자본확충 비용을 합쳐 총 1조원대의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 산은이 어느 수준까지 추가 자금을 부담하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검토 범위 상단인 5000억원 규모의 추가 증자를 단행하면 한투지주가 부담해야 할 자본확충 비용은 그만큼 줄어든다. 한투지주 입장에서는 여유 재원을 영업망 확대와 상품 경쟁력 강화 등 KDB생명의 사업 정상화에 투입할 여지도 커진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KDB생명의 체질개선 속도를 앞당기려면 구조조정을 포함해 대대적인 재편이 병행돼야 하는데, 산은 산하에서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KDB생명은 자산총계가 17조원에 이를 정도로 일정 수준의 외형을 갖춰, 적정 매각가만 형성된다면 충분히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