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준우 기자] 코스닥 상장사 '지어소프트'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일고 있다. 미국계 투자사 ‘미리캐피탈’이 지어소프트 지분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최대주주인 김수철 대표 측과의 지분율 격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 과거 미리캐피탈의 국내 상장사 투자 행보를 고려하면 당장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목할 부분은 지어소프트가 총발행주식의 21%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게 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미리캐피탈이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데다 투자 목적도 '일반투자'로 명시하고 있어 향후 자사주 소각·처분 등 주주가치와 직결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특히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비중이 늘어날수록 미리캐피탈의 실질적인 주주총회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미리캐피탈은 최근 장내매입을 통해 지어소프트 지분을 10.77%(166만6500주)까지 확대했다. 지난 3월 지분율을 5.1%(79만3900주)로 끌어올리며 처음 주식대량보유 공시를 한 이후 4개월여 만에 보유 지분을 두 배 이상 늘린 셈이다.
미리캐피탈의 지분율이 두 자릿수에 진입하면서 최대주주 측과의 지분 격차도 빠르게 좁혀졌다. 현재 지어소프트 최대주주는 김수철 대표로,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지분율은 27.84%다. 미리캐피탈이 지난 3월 처음 5% 이상 주주로 이름을 올린 이후 양측의 지분율 격차는 22%포인트대에서 현재 17.07%포인트까지 축소됐다.
지분율만 놓고 보면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당장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여기에 미리캐피탈이 국내 상장사에 투자하면서 보여준 행보 역시 적극적인 경영권 개입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틱인베스트먼트다. 앞서 미리캐피탈은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얼라인파트너스 등 행동주의 펀드와 표대결을 앞둔 상황에서 오히려 백기사를 자처하며 대주주 측에 섰다. 이후 올해 초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최대주주로 올라섰지만 이사회에는 진입하지 않으면서 경영 참여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코스닥 상장사 투자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미리캐피탈은 인포바인을 비롯해 지니언스, 한국알콜 등 다수 코스닥 상장사의 주요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대주주 측과 직접적인 경영권 분쟁을 벌인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근 맥쿼리의 가비아 공개매수 과정에서 공개매수 가격 산정 등을 문제 삼아 목소리를 낸 것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주주활동 사례로 꼽힌다.
현재까지 국내 상장사 투자 사례만 놓고 보면 미리캐피탈은 경영권 확보보다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는 투자 성향에 가까운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캐피탈이 국내 코스닥 상장사 투자를 본격화한 시점이 대부분 지난해와 올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투자 이후 기업의 대응과 주주가치 제고 여부를 지켜보는 단계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 대상에서는 일정한 공통점도 발견된다. 미리캐피탈이 지분을 확보한 상장사 상당수가 안정적인 이익을 내면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미코 등을 제외하면 차입 부담이 크지 않은 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지어소프트 역시 이 같은 투자 기준에 부합한다. 지난해 연결기준 25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 기간 현금보유고는 약 1603억원이며 단기차입금은 없다. 본업인 유무선 시스템 개발 등 IT서비스는 물론 핵심 자회사 오아시스를 통해 영위하는 이커머스 사업 부문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어소프트는 안정적인 실적과 현금뿐 아니라 오아시스 지분가치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리캐피탈의 투자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으로 꼽힌다. 지어소프트의 자체 사업가치에 자회사 가치와 현금성 자산을 함께 고려할 경우 기업가치 재평가 여력이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지어소프트가 미리캐피탈의 행보를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리캐피탈은 지분 10.77%를 확보하면서 주주총회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주요주주로 올라섰다. 특히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가 아닌 '일반투자'로 기재하고 있어 주주가치와 관련한 사안에 의견을 제시할 여지도 열려 있다.
지어소프트가 보유한 대규모 자사주는 양측의 관계에서 가장 주목할 변수로 꼽힌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지어소프트는 자사주 199만5523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발행주식총수의 12.9% 수준으로, 2024년과 2025년 두 차례에 걸쳐 매입한 물량이다.
여기에 최근 100억원 규모의 추가 자사주 매입도 결정했다. 공시한 취득 계획대로 매입이 마무리될 경우 자사주 보유량은 기존 199만5523주(12.9%)에서 약 326만1346주, 발행주식총수의 21% 수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자사주 비중이 확대될수록 나머지 주주들의 실질적인 의결권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자사주 비중이 약 21%까지 올라간다고 단순 가정하면 발행주식의 10.77%를 보유한 미리캐피탈의 지분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 기준으로 약 13%대까지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주총에서 미리캐피탈의 존재감을 단순 보유지분율 이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미리캐피탈이 투자한 A상장사 관계자는 "미리캐피탈이 자사 지분을 매입한 이후 특별히 무언가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며 "올해 자사주를 소각하며 주주환원에 나섰는데 해당 결정은 미리캐피탈의 요구에 따른 것이 아닌 자체적인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처분하기로 결정했다면 미리캐피탈 측에서 액션을 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이는 미리캐피탈이 피투자기업의 일상적인 경영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자사주 활용처럼 주주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현재 지어소프트는 올해 1분기 보고서를 통해 자사주의 계속보유 계획을 밝힌 상태다. 현재로서는 대규모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을 공식화하지 않은 만큼 향후 자사주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자사주 처분을 비롯해 주주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사결정이 이뤄질 경우 10% 이상을 보유한 미리캐피탈의 입장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상법에 따라 자사주를 처분하려면 처분계획을 작성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평소 경영 참여에는 거리를 두더라도 주주가치 훼손 여부에 따라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리캐피탈의 지분 확대가 당장의 경영권 위협보다는 지어소프트의 자사주·주주환원 정책에 새로운 견제 변수를 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딜사이트는 현재까지 미리캐피탈 측으로부터 특별한 요구가 있었는지 여부와 자사주 소각 계획 등을 문의하고자 지어소프트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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