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정부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추진하면서 적자에 시달려 온 국내 가상자산 수탁업계가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현물 ETF는 운용사가 상품 규모에 맞춰 실제 비트코인을 지속적으로 매입·보관해야 하는 구조인 만큼 ETF 시장이 커질수록 수탁 자산과 수수료 수익도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기관투자가의 자산을 맡길 만한 자본력과 사고 대응 능력을 갖춘 사업자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가상자산은 자본시장법상 ETF 기초자산으로 인정되지 않아 국내 자산운용사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할 수 없다. 구체적인 도입 시기와 상품 구조, 기초자산의 수탁 방식 등은 금융위원회와 국회의 입법 논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현물 ETF 도입이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가상자산 수탁시장이다. ETF는 설정·환매 과정에서 운용사가 ETF 순자산가치(NAV)에 상응하는 실제 비트코인을 지속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이에 따라 수탁사는 보관 자산 규모에 비례해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기존 코인 재단 중심의 일회성 수익 구조에서 기관금융 중심의 반복 매출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법인과 기관투자가의 시장 참여가 확대될 경우 장외거래(OTC), 담보관리, 스테이킹 등 연계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여지도 있다.
현재 국내 수탁업계는 이러한 사업 모델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제한된 데다 개인투자자 역시 대부분 거래소에 자산을 보관하면서 독립 수탁사를 이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 주요 고객도 코인 발행 재단 등에 집중돼 있어 수탁 자산이 프로젝트 존속 여부와 가상자산 가격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다.
실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수탁고는 2024년 6월 말 13조8000억원에서 같은 해 말 1조5000억원, 지난해 말 3071억원으로 감소했다. 법인시장 위축과 주요 고객 감소 등이 겹치면서 1년 반 만에 수탁 규모가 약 98% 줄어든 셈이다.
수탁사들의 실적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비댁스는 45억원, 한국디지털에셋(KODA)은 16억원,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은 19억원, 인피닛블록은 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주요 사업자 모두 본업에서 적자를 냈다. 수탁업은 거래량보다 보관 자산 규모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지만 기관 고객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반면 보안 시스템 구축과 전문인력 확보, 가상자산사업자(VASP) 지위 유지 등에 필요한 고정비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전통 금융기관과 디지털자산 전문 수탁사가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현금 결제와 증권 관련 업무는 은행 등 기존 금융기관이 담당하고, ETF가 보유한 실제 비트코인은 코인베이스 커스터디(Coinbase Custody) 등 디지털자산 전문 수탁사가 보관한다. 블랙록과 아크인베스트 등 주요 현물 ETF 운용사도 코인베이스 커스터디를 활용하고 있으며, 코인베이스는 미국 가상자산 현물 ETF 발행사의 80% 이상에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국내에서도 ETF가 도입된다고 모든 수탁사가 곧바로 수혜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천억원 이상의 기관 자산을 맡기려면 충분한 자기자본과 보험·준비금, 콜드월렛 운영체계, 다중서명(Multi-signature), 키 복구 체계 등을 갖춰야 한다. 기관투자가가 요구하는 내부통제와 보안 인증, 사고 발생 시 손실 배상 능력 역시 사업자 선정의 핵심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수탁사의 자본력이나 배상 한도가 ETF 수탁 자산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면 계약을 체결하기 어렵다. 향후 은행이나 대형 거래소, 해외 전문 수탁사까지 시장에 진입할 경우 자본력과 브랜드 신뢰, 보험 가입 여력 등에서 독립 수탁사가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결국 현물 ETF가 국내 수탁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개정뿐 아니라 수탁기관의 자격과 책임 범위, 사고 배상 체계 등을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탁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도입되면 실제 비트코인 보관 수요가 늘면서 수탁고와 수수료 수익이 확대돼 적자 중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결국 기관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준의 보안과 규제 대응, 거래 지원, 리포팅 체계 등 종합 서비스를 갖춘 전문 수탁사만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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