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모임인 PEF운용사협의회가 정식 사단법인 형태의 상설 협회 전환을 추진하자 당국의 감독 강화를 우려한 일부 운용사를 중심으로 이탈 움직임이 감지된다. 업계 목소리를 모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논의지만 정부 관리와 감독이 상시화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하며 회원사 간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모습이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PEF협의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고 정식 사단법인 협회 전환을 위한 안건을 논의했다. 지난해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 사태 이후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사모펀드 견제 가능성이 지속해서 거론되면서 협의회의 협회 전환 논의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협의회 측은 협회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금융당국과 직접적인 조율을 진행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협의회는 우선 다음달 중 임시총회를 열고 전체 회원사를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내부 중지를 모으는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회원사들의 뜻이 한데 모이면 이를 바탕으로 금융당국의 문을 두드려 공식 협회 설립 관련 안건을 제안하고 본격적인 논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식 협회 출범을 향한 내부 논의 과정에서 주요 운용사들의 탈퇴와 이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국내 주요 운용사 중 하나인 한앤컴퍼니가 지난 4월 협의회를 탈퇴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앤컴퍼니의 이탈 이후 분위기를 관망하던 일부 운용사들마저 협회 설립이 가시화되자 독자 행보를 검토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운용사들이 협회 설립에 난색을 표하는 배경에는 공모펀드와 구분되는 사모펀드 본연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자금을 모으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소수의 전문 투자자 자금을 받아 운영된다. 투자 대상 선정부터 자금 집행, 회수에 이르기까지 운용의 자율성과 비밀 보장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의 단체가 아닌 상설 사단법인 형태의 협회가 출범할 경우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감시망이 상시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당국과의 소통 창구가 일원화되는 과정에서 정례적인 보고 의무나 자료 제출 요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요 출자자(LP)들 역시 자신들의 투자 내역이나 내부 정보가 외부에 드러나는 상황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
협회 전환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벤처캐피털(VC) 업계의 한국벤처캐피탈협회를 모범 사례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IB 업계에서는 PEF와 VC의 시장 생태계가 달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VC 업계의 경우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 등 정부 정책 재원이 펀드 결성의 핵심 축을 이룬다. 정책 자금을 기반으로 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당국에 업계 의견을 건의하거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공통 창구가 필수적이다. 또한 투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여러 운용사가 자금을 나누어 들어가는 클럽딜 형태의 공동 투자가 활발해 운용사 간 네트워크 형성과 협력이 중요한 구조다.
반면 PEF 운용사들은 정부 정책 재원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 자금을 중심으로 펀드를 조성한다. 개별 하우스가 단독으로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바이아웃 투자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다른 운용사와 연대해 공통의 목소리를 낼 이유가 적다. 각 운용사가 독자적인 투자 전략을 실행하는 구조에서 상설 협회 출범은 자율적 영업 활동을 제약하고 당국의 규제 틀을 굳히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오는 10월 회원사 표결을 앞두고 대관 창구 신설을 통한 대응력 강화와 개별 운용사의 영업 자율성 보장이라는 두 명분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금융당국 타진에 앞서 내부 수용성을 확보하는 일이 과제로 떠올랐지만 대형 운용사들의 이탈과 거리두기가 이어질 경우 상설 협회 추진 동력은 동반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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