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통합 논의가 21년 만에 재점화된 가운데 이번 통폐합의 주도권은 기술보증기금과 중소벤처기업부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대 기관의 통합 논의는 지난 2005년 프라이머리CBO 보증 부실 여파로 촉발됐던 적이 있는데 20여 년 전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통폐합 논의가 21년 만에 재점화한 가운데 정부가 완전 통합이 무산되더라도 고강도 기능 조정은 관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과거 금융당국이 주도했던 구조조정 국면과 달리 현 정부의 벤처·모험자본 육성 기조와 정치적 지형 변화가 맞물려 거버넌스 재편의 주도권은 기술보증기금과 중소벤처기업부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신보와 기보의 중복 보증을 해소하기 위해 '완전 통폐합'과 '효율적 기능 조정'을 병행 검토하고 있다. 설령 조직 자체의 물리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중복 심사 프로세스를 차단하고 보증 영역을 명확히 나누는 수술은 피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두 기관의 유사 업무를 정리해 행정 비용을 절감하고 보증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구조 개편은 21년 전 상황과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지난 2005년 프라이머리CBO(P-CBO) 보증 부실 여파 당시에는 기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260여명의 인력을 감원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겪었다. 당대 신보 출연금 중 3000억원가량이 기보로 지원되는 과정에서 신보 주도의 흡수통합안이 추진됐고 주도권은 신보와 재경부(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가 쥐고 있었다. 당시는 기보의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현재는 벤처 자금 일원화를 내세운 중기부와 기보가 판도를 주도하고 있다. 현 정부가 벤처·혁신기업 중심의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국정과제로 내걸면서 중기부 중심의 통합 및 기능 조정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방만 경영 개선 수준을 넘어 기구 통폐합이나 강도 높은 업무 재편을 통해 국정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신보와 기보는 핵심 업무 구조가 유사해 통합 시 행정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본사 역시 대구와 부산에 각각 1본사와 2본사를 두는 방식으로 이원화할 수 있어 기술적 장벽도 낮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및 거버넌스 지형 변동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중기부 장관을 지낸 한성숙 국무총리가 공공기관 개혁과 지방 이전 작업 등을 조율하는 위치에 오르면서 관련 부처 중심의 중소기업 정책 일원화 구상에 한층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중기부는 중소기업 및 벤처 지원 정책금융 창구를 단일화해 신속한 자금 집행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지역 정치권의 셈법도 기보 쪽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기보 본사가 위치한 부산의 경우 민주당 소속 전재수 시장이 시정을 이끌고 있어 여권의 벤처 생태계 육성 기조와 맞물려 정책적 지원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신보 본사가 소재한 대구는 국민의힘 소속 추경호 시장이 재임 중이어서 상대적으로 여권 내 추진 동력을 끌어내기 쉽지 않은 구조다.
통합 및 기능 조정 논의는 단지 두 보증기관에 머물지 않고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창업진흥원 등 중기부 산하 정책 기관 전반의 기능 재편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창업 지원부터 보증과 투자를 아우르는 거대한 중소기업 금융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중기부의 구상이 구체화하는 양상이다.
이처럼 중기부와 기보 중심으로 통합 논의의 추가 기울자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신보 내부에서는 상당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는 신보가 보유한 자본시장 안전판 기능과 유치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고려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위로서는 정책보증 기관인 신보가 중기부 산하 통합 기관으로 편입될 경우 산하에 있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 집행력과 영향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각각 수장 선임을 마치고 경영 전면에 나선 양 기관 이사장들의 셈법도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 3월 취임한 강승준 신보 이사장은 조직 안정을 도모하고 정책보증 역량을 강화하려던 차에 거대한 통폐합 파고를 맞닥뜨렸다. 신보가 주도권을 빼앗긴 채 중기부 산하로 편입될 경우 기존 금융위 체제에서 구축해 온 정책금융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어 강 이사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지난 15일 선임된 권형택 기보 이사장은 취임 직후 중기부 중심의 통합론이 힘을 받으면서 기관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통합 거버넌스의 주도권을 쥐게 될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과거 통합 논의가 금융당국 주도의 부실 기관 구조조정 성격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중기부 중심의 벤처·혁신 자금 일원화로 국정 우선순위가 옮겨간 형국"이라며 "정부의 개혁 기조와 정치적 명분이 결합해 정책금융 거버넌스의 주도권이 사실상 중기부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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