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해성그룹 계열사 한국제지가 이달 시행된 저가주 상장폐지 제도에 대응해 주식병합 카드를 꺼냈다. 병합이 완료되면 주가는 단순 계산상 5배로 높아져 관리종목 지정 기준인 1000원을 웃돌게 된다. 다만 실적 악화와 담합 제재 등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준 요소는 여전해 주식병합이 고육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제지는 지난 14일 제43기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제2호 의안으로 ‘주식병합 승인의 건’을 상정했다. 이 안건은 84.8%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한국제지 1주당 액면가액은 1000원에서 5000원으로 높아지고, 보통주 발행주식 수는 1억9015만720주에서 3803만144주로 줄어든다. 주식 수가 5분의1로 감소하는 만큼 이론상 주가는 병합 전보다 5배가량 높아진다. 신주의 효력 발생일은 이달 29일이며, 신주권 상장 예정일은 다음 달 14일이다.
15일 종가(541원)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병합 이후 한국제지 주가는 약 2700원 안팎에서 형성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초 발표한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에 담긴 저가주 관리종목 지정 기준인 1000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라 관리종목 지정 리스크는 해소하는 셈이다.
한국제지 측은 "2024년 말부터 주가가 액면가 부근에서 횡보하기 시작했고, 당시부터 주가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주식병합을 검토해왔다"며 "금융당국의 제도 시행에 따른 시장 환경 변화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제도 변화에 대응한 일시적인 조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제지 주가는 장기간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10월23일 주가가 996원으로 내려가며 1000원 선이 무너진 뒤 2025년 평균 종가는 약 808원에 그쳤다. 지난달 26일에는 종가 기준 522원, 장중 510원까지 떨어지며 1000원 아래로 내려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가 약세는 제지 수요 감소에 따른 업황 부진과 실적 악화, 중대재해 및 담합 제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인쇄용지 생산량은 2021년 244만3726톤(t)에서 2024년 226만4008t, 지난해 208만3312t으로 감소했다. 4년 만에 14.7% 줄어든 규모다. 같은 기간 내수 판매량도 142만461t에서 112만4407t으로 20.8% 감소했다.
수요 감소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한국제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4.3% 감소한 31억원에 그쳤고, 당기순손익은 41억원 흑자에서 335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45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인쇄용지 가격 담합 과징금을 반영하면서 476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이에 따라 결손금은 지난해 말 277억원에서 올해 3월 말 430억원으로 늘었고,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63.7%에서 96.6%로 뛰었다. 올해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약 490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받으면서 투자심리에도 부담이 더해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주식병합이 근본적인 주가 부양책보다 저가주 기준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위험을 늦추는 임시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주식 수와 주당 가격은 바뀔 뿐 기업가치와 수익성이 함께 개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지업황 부진과 실적 악화 등 주가 하락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병합 이후에도 주가가 다시 1000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제지는 실적 반등을 통해 주가 회복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제지 관계자는 “2023년 세하가 비상장 옛 한국제지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손상 인식 등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적자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들어 패키지 부문이 수요 회복에 힘입어 영업흑자로 전환했고, 인쇄용지 부문도 대외 여건 개선에 따라 업황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해 하반기부터 실적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병합 이후에도 주가가 다시 하락한다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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