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기계는 흔히 '기계를 만드는 기계'로 불린다. 하지만 이제 공작기계는 단순한 생산 장비를 넘어 기술 주권과 공급망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자동차·반도체·우주항공 등 핵심 산업의 자국 생산 역량 확보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공작기계의 가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국내 주요 공작기계 업체들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권형석 화천기계 총괄사장이 본업 수익성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올해 1분기 공작기계와 자동차부품 사업이 나란히 적자를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실패한 데다, 방산·3D프린터·소프트웨어 등 신사업도 아직 실적 기여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권 총괄사장이 10년 넘게 경영 전면에 서 있는 동안 화천기계의 실적은 전방 산업 업황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며 부침이 큰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본업 경쟁력 강화와 사업 다변화 성과를 동시에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작기계·자동차 부품 동반 부진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화천기계는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매출 462억원, 영업손실 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9%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적자가 지속됐다. 사업별로 보면 공작기계 부문은 매출 188억원, 영업손실 2억원을 냈고, 자동차부품 부문도 매출 273억원, 영업손실 3억원을 기록했다. 자동차부품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영업손실 폭은 213% 확대됐다.
부진은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화천기계는 2025년 별도 기준 매출 2145억원, 영업이익 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7.6% 줄었고 영업이익은 90% 감소했다. 외형이 축소된 가운데 수익성도 크게 악화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화천기계의 부진 배경으로 애매해진 시장 포지션을 꼽고 있다. 과거 강점을 보였던 금형·정밀가공 수요가 위축된 데다, 자동차 등 대형 고객사 수요와 직접 연결되는 제품군도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제품군별 경쟁력이 수직형 머시닝센터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화천기계가 시장에 판매하는 수직형 머시닝센터 제품 수는 44개인 데 비해 수평형 머시닝센터 제품은 5종에 그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화천기계는 200종이 넘는 라인업을 갖추고 있지만, 종합 공작기계 메이커의 핵심 기술 지표로 꼽히는 수평형 머시닝센터 라인업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며 "기계 자체는 무난하지만 기술력이나 가격, 서비스 측면에서 고객사를 새로 끌어올 만한 강한 선택 요인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본업 부진을 보완할 신사업도 아직 실적 방어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화천기계는 2024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군납 물자 제조, 3D프린터 기기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지만 현재까지 매출 기여는 제한적이다. 회사는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서 군납 물자 사업에 대해 "현재까지 전문 인원 충원 및 사업 추진, 매출 발생 내역이 없다"고 밝혔고, 소프트웨어 사업도 솔루션 개발 단계라고 설명했다.
◆ 권형석 체제 11년, 흑자 낸 해는 6번
화천기계의 부진은 단순히 올해 1분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 총괄사장이 취임한 2015년 이후 화천기계의 별도 실적은 줄곧 등락을 거듭했다. 지난해까지 11년간 영업이익을 낸 해는 6번에 그쳤다. 같은 기간 매출도 1000억~2000억원대에 갇히며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실제 2015년 2319억원이던 화천기계 매출은 2020년 1368억원까지 줄었다. 2025년 2145억원으로 회복했지만 2015년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2011년 매출 2962억원, 영업이익 17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업계 선두권 업체와 비교해도 성장 정체는 두드러진다. DN솔루션즈는 두산공작기계 시절인 2015년 연결 기준 매출 1조6629억원, 영업이익 717억원에서 2025년 매출 2조2066억원, 영업이익 4116억원으로 외형과 수익성을 모두 키웠다. 단순 체급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같은 업황 속에서도 수익성 방어력과 성장 궤적에서 차이가 나타난 셈이다.
업계는 결국 권 총괄사장 체제의 과제가 본업 수익성 회복과 신사업의 실질적 성과 창출로 압축된다고 보고 있다. 공작기계와 자동차부품 양축이 업황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신규 사업이 어느 시점부터 실적 방어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향후 경영 성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공작기계 업계 한 관계자는 "화천기계는 국내 주요 공작기계 업체로 자체적인 제품 색깔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성능 대비 가격 매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가격, 납기, 서비스 등에서 차별화가 필요한데 아직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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