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 해지가 이어지며 'EV 캐즘'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공시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수요 둔화 그 자체보다, 북미 시장 확장기 속도전을 위해 선택한 계약 구조가 업황 둔화 국면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해지된 계약들의 공통점도 뚜렷하다. LG엔솔은 포드와의 일부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해지했으며, 배터리팩 업체인 프루덴베르크 배터리 파워 시스템즈(FBPS)와의 공급계약 역시 상대방의 배터리 사업 철수 결정에 따라 정리됐다.
2024~2025년 LG엔솔이 공시한 단일판매·공급계약 체결·해지 내역을 보면, 조정된 계약들은 공통적으로 전용 설비 투자나 완성차와의 합작법인(JV) 구조를 수반하지 않았다. 완성차 핵심 플랫폼과 장기간 결합된 계약이 아니라, 특정 모델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체결된 공급계약들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조정 국면에서 먼저 정리될 수밖에 없는 계약군이 순서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공시된 계약 해지 사유를 보면, 상대방의 사업 전략 변경이나 프로젝트 종료에 따른 상호 합의 해지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는 해당 계약들이 전용 설비 투자나 장기 락인 구조보다는 수요 조정 시 상대방 결정에 따라 정리될 수 있는 구조였음을 방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5년 12월 해지된 프루덴베르크 배터리 파워 시스템즈(FBPS)와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이다. 해당 계약은 2024년 4월부터 2031년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계약 상대방의 배터리 사업 철수 결정으로 상호 합의 해지됐다. 앞서 해지된 포드와의 일부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 역시 EV 모델 생산 중단 결정 이후 정리됐다.
이 외에도 LG엔솔이 북미에서 체결해온 단일판매·공급계약을 보면, 전용 설비 투자나 합작법인(JV) 설립 없이 기존 생산 체계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계약 대상 역시 완성차 전사 플랫폼보다는 특정 차종이나 프로젝트 단위에 집중돼 있었다. 이러한 계약 구조는 성장 국면에서는 빠른 물량 확보 수단으로 작동했지만, 업황 둔화 국면에서는 수요 변동 시 계약 조정 부담이 배터리사 쪽으로 이전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LG엔솔은 단일판매·공급계약의 성격상 계약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입장이다. LG엔솔 관계자는 "완성차 핵심 플랫폼과 연계된 계약은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부담이 큰 구조인 반면, 단일판매·공급계약은 프로젝트 단위로 체결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유연한 성격을 갖는다"며 "공시되지 않은 계약까지 감안하면 계약 체결과 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계약 해지를 중국 LFP(리튬인산철) 업체들의 확장과 연결 짓는 시각도 제기된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LFP 배터리가 일부 차급에서 대안으로 거론되면서, 배터리 업체들의 수주 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이런 해석의 배경이다.
다만 LG엔솔은 중국 LFP 업체들의 확장이 이번 계약 해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해석에는 선을 긋고 있다. 관계자는 "북미 시장은 중국 업체가 직접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인 데다, LFP와 NCM 모두 현지 생산 여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환경"이라며 "이번 계약 조정은 중국 업체와의 경쟁보다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정책과 보조금이 축소되고, OEM들이 수익성을 재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단일판매·공급계약뿐 아니라 완성차와의 합작법인(JV) 역시 전기차 수요 변동성이 커진 환경에서 운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최근 SK온과 포드가 설립한 북미 합작법인 '블루오벌SK'가 합작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공장 운영을 각사 단독 체제로 전환하기로 한 사례가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장은 어떤 계약 형태가 더 낫다고 단정하기보다, 각 계약 구조가 가진 비용과 제약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는 국면"이라며 "확장기에는 장점이었던 구조들이 조정 국면에서는 부담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은 무리한 외형 확대보다는 재무 체력과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향후 시장 회복 국면에서도 조정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계약 구조를 선별해 나가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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