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제너럴모터스 한국사업장(한국GM)이 최근 들어 미래 기술력 비전을 공유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한국GM의 이 같은 행보가 쉽사리 진화되지 않는 철수설을 의식한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소 3년간은 철수가 불가능한 상황인 데다, 법인을 유지하려면 내수 판매 실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 슈퍼크루즈·전동화 전략 등 미래 기술력 방점…내수 민심 회복 차원
29일 완성차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GM은 내달 1일 최첨단 주행 기술인 '슈퍼크루즈'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주요 진행 상황을 공유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GM 전문가들이 직접 슈퍼크루즈에 대해 소개하고, 기술적 강점과 안정성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GM은 2012년부터 핸즈프리 기능을 '슈퍼크루즈'로 명명하고 반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해 왔다. 정밀 지도와 라이다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슈퍼크루즈는 스티어링 휠이나 가속 페달 조작 없이 스스로 고속 주행이 가능한데, 테슬라 '풀 셀프 드라이빙'(FSD)와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슈퍼크루즈는 글로벌 GM이 미래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기술로 꼽히고 있다.
이보다 앞선 올 7월에는 국내 미디어를 대상으로 'GM 배터리 테크놀로지 러닝 세션'을 갖고 차세대 배터리 전략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세부적으로 GM 주요 협력사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차세대 배터리 아키텍처와 글로벌 협업 사례 등을 공유하며 전동화 방향성을 제시했다.
주목할 부분은 한국GM이 기술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회사가 연례행사로 매년 초 개최하는 신년 간담회에서는 출시가 예정된 신차 라인업과 중·단기 사업 전략 등을 공유해 왔을 뿐, 특정 기술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마저도 올해 신년 간담회는 건너 뛰었는데, 한국 시장에 판매할 신차가 마땅치 않았던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한국GM이 기술력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 주된 요인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민심 회복을 유력하게 거론 중이다. 매년 반복되던 철수설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내수 판매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GM은 올 들어 8월까지 내수에서 총 1만554대를 팔았는데, 전년 동기보다 39% 위축됐다. 또 올 5월 이후 3개월 연속 월평균 5%씩 줄어드는 추세다.
◆ 美 관세 탓 연간 적자 가능성…노란봉투법·자산 매각 등 경영환경 '불안'
한국GM의 철수설은 전신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진 고질적인 리스크다. GM 본사는 부인해 왔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미국 관세 이슈와 노란봉투법, 사측의 자산 매각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에서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국GM은 지난해 완성차 기준 총 49만9559대를 판매했다. 이는 2017년 이후 역대 최대 판매량이다. 내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9% 줄어든 2만4824대에 불과했지만, 수출 물량이 10.6% 증가한 47만4725대를 달성한 결과다. 특히 수출 분의 87%에 달하는 41만대는 북미 시장으로 향했다. 한국GM은 해외 수출 부문의 호조로 2022년부터 3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을 뿐 아니라, 지난해 1조3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를 대상으로 25%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실적 악화를 예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의 관세를 15%로 인하하기로 약속했지만, 적용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한국GM이 올 2분기 동안 8000억원에 육박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연간 적자 전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최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강성인 한국GM 노조로 힘이 실리고 있는 데다, 사측이 전국 9개 서비스 센터와 부평공장 일부의 매각을 결정한 점은 철수설을 부추기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GM 노사가 올해 임금 및 협약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이달 23일 노사가 타결한 잠정 합의안에는 ▲기본급 9만5000원 인상 ▲경영성과급 1750만원 지급 등이 골자다. 특히 합의안에는 한국GM이 2028년도 이후 신차 생산 계획을 수립해 뒀다는 내용이 담겼다.
◆ 산은, GM 엑시트 2028년 이후로 설계…자생력 입증 중요
문제는 한국GM이 기 발표한 미래 비전과 전략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회사는 지난해 2월 신년 간담회에서 1년 동안 4종의 신차를 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3종을 출시하는데 그쳤다. 또 2.2%의 국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포부가 무색하게 지난해 1.9%로 오히려 0.3%포인트(p) 하락했다. 특히 풀체인지(완전변경) 신차의 경우 2023년 3월 이후 전무한데,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위축됐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한국GM 노사 합의안의 신차 계획 시점이 2028년 이후로 설정된 이유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공교롭게도 글로벌 GM이 2028년 이후 철수할 수 있는 퇴로가 열리는 시점이라서다. 앞서 한국GM은 2018년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 당시 산업은행(산은)은 GM 본사와의 긴 공방 끝에 GM의 일방적인 경영권 행사를 견제하는 비토권과 산은 측 이사 3명에 대한 추천권 등을 조건으로 현금을 출자했다.
산은은 GM의 이른바 '먹튀'를 막기 위해 2023년까지 5년간 GM의 지분 매각을 제한하기로 했으며, 2028년까지 GM이 최대주주(지분율 35% 이상)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최소 10년간은 한국 시장에 머물며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나가도록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GM이 철수를 하려면 최소 3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산은은 당초 2022년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노렸지만, 2028년 이후로 시점을 늦췄다.
업계에서는 미국 고관세 부과로 한국GM의 로드맵에 차질이 빚어졌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존에는 북미 수출 물량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수 판매 물량으로 수익성 훼손을 보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GM이 국내 소비자들의 민심을 다시 얻기 위해 다양한 기술 경쟁력을 뽐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GM의 내부 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기간 신차 부재로 붕괴된 충성 고객층을 다시 끌어 모아야 하는 한국GM 입장에서는 자력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수 점유율 회복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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