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공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조직 내부에 공감대가 형성된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법이면서 리더십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 농협상호금융 독립법인화 등 주요 공약이 꾸준히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위해 넘어야 할 현실적 장벽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에선 김병원 전 회장 때의 상황이 강 회장 체제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레 나온다. 김 전 회장 역시 2016년 취임하며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 농협상호금융 독립법인화를 약속했지만 결국 공수표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강 회장이 취임한 지도 1년 3개월이 흘렀지만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등과 관련한 움직임은 딱히 감지되지 않고 있다. 두 사안 모두 속도감 있는 추진이 어려운 만큼 금융권 일각에선 무산 가능성을 점치는 시선도 나온다.

지난해 8월 농협중앙회에 미래혁신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 등이 본격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후 이렇다 할 실행 계획이나 세부 방안 등은 나오지 않고 있다.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과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등 공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경제지주를 중앙회에 통합하려면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법안 발의와 법안소위, 법사위 논의 후 국회 본회의 통과 등 과정이 복잡하다.

농협상호금융 독립법인화 역시 단순히 조직을 분리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과 마찬가지로 지배구조와 관련된 만큼 농협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농협상호금융이 법인화되어 금융회사로 전환하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

공식 절차 외에도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조직 내부에서 합의도 끌어내야 한다.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의 경우 무엇보다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추진했던 명분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앞서 정부는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을 직접 운용하는 과정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이 미흡하다는 점 때문에 신경분리를 추진한 바 있다.

김 전 회장도 후보 시절 농협경제지주가 지역농협과 경쟁하면서 규모가 작은 지역농협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경제지주 폐지를 주장했으나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에 부딪혀 취임 직후 공약을 철회했다.

농협경제지주를 중앙회에 통합하려면 중복된 조직과 인력을 조정하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내부 논의와 이해 조율도 필요하다. 당초 농협경제지주의 중앙회 통합 공약이 나온 배경에 저조한 운영 효율성 등도 있는 만큼 경제지주 조직과 인력을 그대로 흡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호금융 독립법인화도 조합 간 수익 배분 방식, 조직 정체성 문제 등으로 내부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NH농협은행과 업무 중복 문제 등 사안도 조율해야 한다. 결국 강 회장이 공약을 실현하려면 설득력과 정무적 감각, 조직 장악력 등을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