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금융감독원이 매출과 비용을 각각 6조원씩 부풀려 공시한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회계 심사에 착수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간 한국투자증권은 매출과 비용이 함께 많이 계산된 터라 순익에는 변동이 없어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금융당국의 이번 회계 심사 착수로 달라진 분위기다.
특히 회계업계는 한국투자증권의 이 같은 회계처리가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라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감리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면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5년간 내부 부서 간 외환거래에서 발생한 손익을 재무제표에 매출과 비용으로 이중 계상해, 총 5조7000억원의 영업수익과 영업비용을 과다 계상했다. 이에 금감원은 해당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회계심사에 착수했으며, 중과실 또는 고의성이 확인될 경우 감리로 전환해 기관주의나 과태료 등 제재에 나설 방침이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사업보고서를 정정하며, 리테일 부서와 외환(FX) 부서 간 내부 환전 과정에서 발생한 외환 손익을 매출과 비용으로 각각 계상한 사실을 밝혔다. 이로 인해 2023년 한 해에만 영업수익이 2조1851억원, 2022년에는 2조886억원이나 부풀려졌다.
이번 사안을 두고 회계업계에서는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사내 부서 간 외화자금의 이동은 증권사에서 흔한 업무지만, 내부거래 제거라는 원칙을 무시한 회계 처리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회계사는 "시스템이 애초에 잘못 설계됐거나, 결산 과정에서 내부거래 제거 절차가 누락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회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회계의 가장 기초적인 두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바로 총액주의와 내부거래 제거 원칙이다. 총액주의는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을 상계하지 않고 각각 총액으로 인식하는 회계 처리 방식이다. 상품 판매 시 매출액과 매출원가를 각각 별도로 기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 내부 부서 간 또는 계열사 간의 거래는 재무제표에서 제거해야 한다. '내부거래 제거' 원칙이다. 이를 어길 경우 기업의 실제 경영성과가 왜곡된다. 내부 외화자금을 주고받는 일상적 행위를 마치 외부와의 거래처럼 인식하면 기업의 실제 성과를 왜곡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사례가 여기 속한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외환 부서와 리테일 부서가 각각 회계처리를 하더라도, 결산 시 내부거래를 상쇄·제거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이 과정이 누락됐다면, 회사의 회계 시스템에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외부 감사인에 대해서도 책임론이 제기된다. 다만 실제로 이러한 오류를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의 외부 감사인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삼정KPMG, 2022년부터 현재까지 EY한영이 맡았다. 당초 거래된 수치들이 회계처리 인식되기 전에 정리되어야 하는데 한국투자증권의 내부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오류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외화거래의 규모는 너무 커서 감사인이 이 개별거래를 일일이 들여다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감원도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회계심사에 착수했다. 만약 심사 과정에서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성이 드러날 경우, 금감원은 감리로 전환하고 기관주의나 과태료 부과 등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특히 과거 키움증권이 유사한 회계 오류로 기관주의와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와 비교해도, 한국투자증권의 오류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한 조치가 예상된다. 키움증권은 지난 2022년 금융사 징계 중 최소 단계에 해당하는 '기관주의'와 약 16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한국투자증권은 키움증권보다 정정 규모가 더 크다. 키움증권은 정정의 규모가 매년 1000억원에서 최대 3000억원 정도였는데,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연간 영업수익 과대계상 규모가 최대 2조2000억원, 총 5조7000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투자증권의 내부 회계처리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사태에 대해 "내부 거래에서 발생한 외환 손익을 매출에 포함한 단순 실수"라며 "영업비용도 함께 줄었기 때문에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에는 영향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와 한국금융지주 투자자들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월에도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터라, 또 다시 높은 수준의 제재를 받을 경우 올해 안에 종합투자계좌(IMA) 인가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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