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태호 기자] 올해 벤처펀드 중간회수 시장 거래가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만기를 앞둔 벤처펀드 규모가 8조원을 넘는 등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컨더리 펀드를 보유한 운용사들은 협상 주도권을 쥐고 양질의 구주를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놓였다.

24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 수는 총 351개다. 펀드 약정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약 8조4531억원에 이른다. 현재 국내 벤처캐피탈이 운용 중인 벤처펀드 수는 1853개로, 약정액은 약 55조원이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벤처펀드는 지난 2014년부터 급격히 늘어났고, 이들이 잇따라 만기를 맞으며 약정액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벤처캐피탈들이 지난해 투자회수(엑시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약정액이 늘어난 원인으로 지목된다. 운용사들은 고금리 여파로 시장 유동성이 급격히 줄자, 펀드 만기를 연장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벤처펀드 만기는 통상 6~8년으로 설정된다. 벤처캐피탈은 3~4년 동안 펀드 자금을 소진하고, 남은 기간 동안 엑시트를 추진한다. 이후 펀드를 해산하고, 6개월 가량의 청산기간을 설정해 잔여 자산을 정리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벤처펀드 포트폴리오 중 35~50%는 구주 매각으로, 25~40%는 기업공개(IPO)를 통한 증시 상장으로 회수된다.

벤처투자 업계는 올해 중간회수 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구주에 자금 대부분을 투자하는 '세컨더리 펀드'를 보유한 벤처캐피탈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마지못해 청산에 나서는 벤처펀드에서 구주 매물이 출회되면, 세컨더리 펀드를 활용해 양질의 기업을 선별하고 지분을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운용 중인 세컨더리 벤처펀드 약정액은 3조원에 못미치는 상황이다. 드라이파우더(미소진자금)는 이보다 한참 적을 것으로 파악된다. 매수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일부 벤처캐피탈은 이 같은 흐름을 예측해 세컨더리 펀드를 앞다투어 조성하고 있다. 'DSC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12월 2030억원 규모 '세컨더리 패키지 인수 펀드 제1호'를 출범했다.

세컨더리 펀드를 운용 중인 벤처캐피탈 심사역은 "유동성이 풍부했던 코로나19 확산 기간에 구주 가격은 신주 대비 10% 가량 낮게 책정됐는데, 최근에는 이 할인율이 30~40%로 높아졌다"며 "시장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도 이전보다 몸값을 낮추기는 어려우므로, 신주 밸류에이션은 유지하되 대신 구주 할인율을 높이고 이를 섞어 단가를 낮추는 방법이 성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도 펀딩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구주와 신주를 섞어 투자하는 방법은 계속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올해는 만기를 맞는 벤처펀드가 많기 때문에, 매수자가 주도하는 구주 거래는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컨더리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다른 심사역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웬만큼 고수익이 나지 않는 이상 출자자(LP)를 설득해 만기를 연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세컨더리 시장의 호황이 예상되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세컨더리 펀드 수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