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홍기 기자] 오늘은 좀 메인요리보단 닝닝한 주전부리같은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몇 년 전 뜨거운 여름, 평소 친하게 지냈던 국내 모 제약사 실무 관계자와 소박한 술자리를 가진 어느 날이었다. 둘 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술의 힘을 빌려 인생 덧없다는 '드립'부터 시작해 멋들어지게 서로 세상 뒷담화를 하던 와중이었다. 새벽대는 아니었지만 늦은 시간 때 아닌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제약사 관계자는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내용은 심플했다. 혼났단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냐는 질문에 어제 밤늦게 야근을 하다보니 피곤해서 오늘 지각을 했는데, 저녁에 술먹고 내일도 늦을 거냐는 '비아냥 반, 꾸중 반'이었단다. 그는 그러면서 '그 상사는 개인 술자리를 한답시고 매일 뒤늦게 출근하는 일이 많은데, 왜 자신한테만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주 한잔을 털어넣는 'K-직장인'의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던 찰나, 문득 그의 옷차림이 긴팔 셔츠에 넥타이, 두터운 정장차림이었단 점도 새삼스레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이었던만큼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제약사 조직 문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입고 나왔을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제약업계 특유의 보수적인 이미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다만 제약사들의 이미지가 왜 이렇게 보수적으로 됐는 지에 대해서는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극심한 실적 압박이 지금의 보수적인 꼰대문화를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 국내 전통 제약사들은 신약보다 주로 제네릭(복제약)을 취급했었는데 같은 효능의 제네릭을 수백개의 제약사가 같이 취급하고 판매해야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했고 그만큼 실적이나 성과가 뒤처지는 임직원들에 대해선 질책과 갈등, 스트레스가 따랐다. 이렇게 되면 회사란 조직 특유의 수직적 문화와 맞물려 분위기가 험악해지게 된다. 다시말해 이에 대한 징계성 조치랍시고 회의나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명분으로 매일 사무실 출근을 시킨다든지 매일 사무실에 귀사를 해서 퇴근을 시키는 일, 회사 회식이라고 무조건 참석을 해야 한다는 등의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적인 꼰대문화가 하나 둘 탄생하게 된다.

더욱이 제약산업 자체가 의학, 약학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전문성을 개개인이 함양해야하는데다 그만큼 전문가 집단 특유의 '끼리끼리'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완전한 '고인물' 세상이 된 데 따른 폐쇄적인 조직 분위기 또한 보수적인 이미지 고착화에 이바지했을 터다.

안타깝게도 최근들어 시대가 변했다지만 제약사 내 보수적인 문화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사명에 '제약'이 붙은 곳보다 '약품'이란 단어가 들어간 곳이 더 꼰대같고 보수적이란 MZ세대들의 마냥 흘려듣기엔 거북한 말부터 시작해, 모 제약사가 특정 요일에 '자유복장'으로 출근토록 했는데 여직원이 민소매 카라티를 입은 것을 두고 노출이 심하다며 인사 패널티를 부여했다는 다소 황당한 에피소드도 종종 들을 정도다.

꼰대와 보수적이란 개념과 이미지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작용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희화화하기보단 제약사들이 새로운 신약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 맞춰 새로운 흐름과 의견을 수렴하는 일련의 열린 마인드를 분명히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풀어준다는 개념보다 일의 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부터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 딱딱한 정장 복장부터 풀어보자. 그들이 적어도 회사 출퇴근 복장을 슬리퍼 신고 하겠단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