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악천후 속 HD현대인프라코어의 보령시험장에는 시현을 앞둔 무인 굴착기와 도저가 한 대씩 서 있었다.  

옛 두산그룹 시절부터 갈고 닦은 HD현대인프라코어의 무인화 기술력과 HD현대의 연구개발(R&D) DNA가 버무러져 무인·자동화 솔루션인 콘셉트 X2(Concept-X2)를 완성하고, 이날 기자들 앞에서 첫 선을 보였다. 

지난 2019년 개발을 마친 콘셉트 X의 한단계 진화한 버전인 콘셉트 X2의 강점은 조정석이 없단 점이다. 앞선 콘셉트 X는 10~20년 건설기계를 운행한 숙련된 작업자의 경험치를 데이터화해 기존 휠로더와 굴착기에 삽입했다면, 콘셉트 X2는 아예 조정석까지 없애 무인화 기계의 정체성을 살렸다.

흔히 볼 수 있는 도저는 상단에 조정석이 달려있지만, 콘셉트 X2를 적용한 도저는 조정석 없이 매끈했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흙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잘 나가다가 작업자가 뒤에 서자 곧 바로 운행을 멈췄다. 센서가 사람을 인지해 자동으로 멈춘 것이다. 회사가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면서 최우선으로 고려한 게 이런 작업장의 사고 위험이다. 

작업자가 빠지자 다시 운행을 시작했고, 미리 입력한 경로대로 블레이드를 땅에 밀착시켜 울퉁불퉁한 지형을 평탄하게 고르는 작업을 진행했다. 

10~20년 건설기계를 몰아온 숙련자의 경험을 AI에 녹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옛 두산인프라코어 시절인 지난 2014년부터 무인·자동화 기술을 고심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관계자는 "2014년 경영진이 머리를 맞대고 향후 10년 완성을 목표로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전문인력이 부족했다"며 "중장기 비전을 세우고 TF부터 곧장 꾸렸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태치먼트는 버켓, 드릴 등 건설현장 용도에 맞게 굴착기의 암, 붐 등에 부착하는 것을 말한다. 콘셉트 X는 어태치먼트로 기존 버킷을 사용했다면 콘셉트 X2는 틸트로테이터를 적용했다. 이 틸트로테이터 덕분에 작업의 효율성이 기존 보다 쑥 올라갔다. 수치화하면 기존 대비 13% 정도 작업 효율이 좋아졌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콘셉트 X가 빛을 보기 전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는 지난 2019년 독일에서 열린 바우마 전시회였다. 한국의 인천과 독일간 8500km 거리를 뚫고 원격제어 기술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당시 시연회는 1시간 가까이 진행했으며, 독일에서 원격으로 제어해 인천에 있는 굴착기를 움직였다. 

기자도 원격제어 기술을 체험해 봤다. 원격 제어 설비가 있는 전시장과 굴착기가 있는 거리는 어림잡아 100m 정도됐다. 실제 굴착기의 조정석을 그대로 옮겨 놓은 원격 제어 장비에 앉아 스틱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듣고 본격 조정에 나섰다. 

두개의 스틱 가운데 암(왼쪽 스틱)을 쥐고 당기자 100m 밖에 있는 굴착기가 회전했다. 오른쪽 스틱을 쥐고 조정하자 가득 흙이 퍼올려졌다. 

손쉽게 움직이는 원격제어 기술을 사용해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굴착도 가능하다. 향후 위험 지역의 공사 현장에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콘셉트 X 구현 과정에서 확보한 개별 기술들은 오는 2025년부터 출시할 차세대 통합 모델에 적용할 예정이다. 

이동욱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는 "대형 사업장에서 무인화 솔루션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여러 건설사가 문의를 주고 있다"라며 "실증 사업을 통해 검증을 완료하면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