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이 최근 3년 새 취약점으로 지적돼 온 수익성과 지배구조 향상을 모두 이뤄낸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사 대한항공이 실적을 크게 향상했고 지주사 한진칼에 대한 조 회장의 지배력 또한 과거 대비 견고해진 것. 여기서 눈길을 끈 부분은 이러한 성과의 배경이 조원태 회장 개인의 경영능력 보단 잇따라 발생한 외생변수 몫이 컸다는 점이다. 실적 개선 배경엔 팬데믹이, 지배력 제고에는 산업은행의 지원 및 주가하락 덕을 톡톡히 본 까닭이다.

18일 한진칼에 따르면 회사가 2020년 발행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딸린 워런트(신주인수권 364만6363주) 가운데 89.7%(326만3155주)가 끝내 행사되지 않았다. BW의 워런트란 투자자가 발행사로부터 사채원금 및 이자를 상환 받음과 동시에 회사의 신주를 살 권리가 부여된 BW에 존재하는 옵션을 말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이를 통해 확정 이자수익 뿐 아니라 BW 발행사의 주가가 오를 시 주식평가·처분이익도 얻을 수 있다. 해당 워런트 대부분은 과거 조원태 회장과 지분경쟁을 벌였던 KCGI와 반도건설이 웃돈을 얹어주고 산 물량으로 파악되고 있다.

워런트 미행사 배경엔 주가 하락이 꼽힌다. 투자자들은 미리 정해둔 약정에 따라 해당 워런트를 통해 한진칼 주식을 주당 5만7200원에 매수할 수 있었는데 행사 만기직전인 지난 6월 2일 한진칼 주가는 4만7250원에 그쳤다. 워런트를 행사할 때마다 주당 9950원의 평가손실을 입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진칼 관계자도 "자사 주가가 떨어지다 보니 워런트 투자자 다수가 행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원태 회장은 워런트 미행사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한진칼 주가가 5만7200원을 상회했다면 신주발행으로 인해 지배력 약화 우려가 또 다시 제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주인수권 326만3155주(행사비율 144%, 실제 발행주식 470만6471주) 전량이 신주 상장됐을 경우 조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기존 19.8%에서 18.5%로 1.3%포인트 축소된다. 주가하락이 조 회장의 지배력 유지에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조 회장이 '변수'를 통해 재미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KCGI 등과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겪던 2020년에는 아시아나항공 이슈로 위기를 넘겼다.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한진칼 지분 10.66%(현재 10.58%)를 취득한 것. 이는 조 회장이 20% 안팎 수준인 특수관계자 지분만으로 반대세력과의 분쟁을 끝내는 재료가 됐다.

실적 측면에서도 운이 따랐다. 대한항공은 2019년 6228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그해 말 부채비율은 871.5%에 달하는 등 실적·재무지표에 모두 빨간불이 들어왔는데, 이 때는 팬데믹를 통해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2020년부터 글로벌 화물운송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진 데 따라 대한항공의 화물운송사업부가 역대급 수익성을 기록한 것이다. 이 덕분에 대한항공은 2021년 순이익 5788억원을 기록,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이듬해에는 1조7295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내며 부채비율도 212.1%까지 개선, 실적과 재무를 모두 정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