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홀딩스는 작년 10월 자금난을 겪던 제주항공을 지원키 위해 1300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EB는 투자자가 보유한 채권을 발행사 또는 발행사가 보유 중인 타사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채를 말한다. AK홀딩스의 EB 교환대상은 자회사 제주항공 보유주식이다. 만기는 2027년 9월 6일이며 이자율은 3%로 책정됐다.

발행 당시 시장은 해당 EB가 AK홀딩스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평가했다. 시중 대비 낮은 금리로 대규모 재원을 조달했고, 사채 발행으로 유입한 현금을 제주항공 유상증자에 투입(1098억원)해 그룹 주력사의 곳간도 채워줬단 점에서다.

제주항공에 대한 AK홀딩스의 지배력이 유지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EB의 최초 교환가액 및 교환주식은 각각 1만6150원, 804만9535주로 책정된 이후 제주항공의 유상증자 당시 각각 1만5050원, 863만7873주로 한 차례 조정됐다. 이에 따라 투자자가 모두 교환할 시 AK홀딩스의 제주항공 지분은 종전 50.6%에서 39.3%로 11.2%포인트 하락한다. 통상 상장사 주주총회 참석 지분이 80%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모회사의 지배력은 여전히 탄탄한 수준인 셈이다. 아울러 해당 EB에는 주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교환가액 조정) 조항도 포함되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주가가 떨어져도 AK홀딩스가 느낄 부담은 적을 것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제주항공 주가가 예상보다 더 크게 하락했단 점이다. 엔데믹 기대감이 고조된 지난 2월 17일만 봐도 52주 최고가인 1만7320원을 터치한 이 회사 주가는 지난 22일 이후 1만3000원 밑으로 떨어졌다. 30일 종가(1만2970원) 기준으로 투자자가 주식을 교환받을 경우 1주당 2080원(13.8%)의 평가손실을 입는 셈이다. EB 투자자가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메리츠증권 등 금융사란 점도 AK홀딩스 입장에선 부담스런 대목이다. 지분투자로 경영권 및 주주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사모펀드가 아닌 만큼 두 자릿수 평가손실률 감내하면서까지 상장사 주식을 들고 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시장이 EB 상환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는 AK홀딩스의 곳간 사정이 녹록지 않아서다. 6월말 기준 AK홀딩스의 보유 현금은 487억원에 그치는 반면, 순차입금은 3627억원에 달한다. EB를 상환하기 위해선 부채를 더 확대해야 하는데 AK홀딩스는 계열사로부터 얻는 배당 및 상표권 사용료 등으로만 매출을 올리는 순수지주사로 사업회사 대비 부채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 회사는 또 다른 계열사인 AK플라자(AK S&D)에 대한 자금 지원도 하고 있는 터라 유휴자금 소진에 따른 부담 역시 어느 때 보다도 커진 상태다.

이에 대해 애경그룹 관계자는 "EB 교환 및 상환에 대한 결정권은 투자자에게 있는 만큼 당 그룹이 논할 게 없다"고 짧게 말했다.

한편 제주항공이 실적 정상화를 이룬 만큼 모회사에 대해 전방위 지원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도 일각서 나오고 있다. 6369억원 가량의 자본잉여금으로 결손(4180억원)을 해소한 뒤 배당을 통해 AK홀딩스의 곳간을 채우고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한 주가부양에 나설 수 있단 것이다. 다만 제주항공은 아직까지 자본전입 등을 계획하지 않고 논의하고 있진 않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