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푸본현대생명보험이 후순위채 발행을 앞두고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 푸본현대생명의 후순위채는 크레디트스위스(CS)의 코코본드 상각 사태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행되는 공모 자본성증권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미매각으로 인해 시장에서는 아직 CS 사태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푸본현대생명이 이날 700억원 규모 후순위채 발행을 위해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매수주문은 110억원에 그쳤다. 이번 후순위채는 올해부터 시행된 보험회사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맞춰 푸본현대생명이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것으로, 10년 만기에 5년 콜옵션(조기상환) 조항이 포함됐다. 이날 미매각이 발생한 데 따라 총액인수 조건으로 대표주관을 맡은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이 590억원 규모 미매각 물량을 인수할 예정이다.

푸본현대생명의 이번 후순위채 미매각은 CS 사태의 여파로 풀이된다. 앞서 스위스의 세계적 IB인 CS는 지난달 유동성 위기로 인해 매각되는 과정에서 코코본드(조건부 상각증권)의 일종인 기타자본증권(AT1)이 전액 소각된 바 있다. 이번 푸본현대의 후순위채는 지난달 CS의 코코본드 상각 사태 이후 국내 첫 공모 자본성증권이었다. 보험사들이 발행하는 후순위채는 상각 조건이 붙지 않지만, CS 사태 이후 자본성증권에 대한 투심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영향을 받았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본성 증권은 해외와 달리 특정 조건이 성립한다고 해서 상각되는 방식이 아니다"면서도 "기관 측에서도 실무 단계에서는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 투자수요 위축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CS의 코코본드 상각 사태가 발생한 지 이제 한 달 된 시점"이라며 "시간이 좀 지나야 시장의 불안감이 누그러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용등급 스플릿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푸본현대생명의 후순위채에 대해 나이스신용평가는 A+(안정적)를, 한국기업평가는 A0(안정적)를 부여하고 있다. 앞서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까지 등급전망을 '긍정적'으로 부여해 신용등급 상향 기대감이 점쳐졌지만, 이달 초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낮추면서 등급 스플릿이 두드러지게 됐다. 김태현 한기평 실장은 "푸본현대생명의 시장 지배력이 낮아진 데다가 신제도(K-ICS) 도입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푸본현대의 후순위채 미매각으로 인해 자본성증권 시장의 불안정한 흐름이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푸본현대의 발행 물량이 많지 않은 데다가 유상증자 등을 통한 추가적인 자본확충 계획이 있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CS 사태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자본성증권에 대한 시장의 투자심리가 얼어있다는 점을 확인한 이상 향후 자본성 조달을 앞둔 금융사들로 영향이 미칠 지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