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국내 대형운용사들의 상당수가 대표이사에게 이사회 의장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 사정에 밝은 최고경영자(CEO)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김으로써 경영 효율성를 꿰하겠다는 구상이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운용사 '톱(Top)6' 가운데 CEO에게 이사회 의장 자격을 부여한 곳은 KB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KB운용은 이현승 대표가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단독대표가 된 지난 2021년 2월 이사회 의장에 오른 뒤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들었다. 조재민 현 신한자산운용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로 재직했던 시기(2018년~2020년)에는 조 대표가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2021년 조 대표 퇴사 후 이 대표가 단독대표로 올라선 후 이사회 의장까지 도맡게 됐다. KB운용을 떠난 조재민 신한자산운용 대표도 신한운용에서 이사회 의장 타이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배재규 한투운용 대표도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한투운용 이사회 의장으로 재선임됐다. 배 대표는 지난해 2월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으로 일해 오다 한투운용에 영입된 직후부터 이사회 의장을 부여받았다. 임기 2기째를 맞아서도 사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총괄하게 된 배 대표로서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한화운용의 사령탑으로 깜짝 발탁된 권희백 대표 역시 전임자인 한두희 대표의 뒤를 이어 이사회 의장 자격을 부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진 견제가 주요 역할인 이사회는 독립성 확보가 필수로 여겨진다. 때문에 이사회 의장은 사내이사 보다는 사외이사에게 그 역할이 주어졌을 때 시장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는 편이다. 실제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13조 1항에서는 '이사회는 매년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을 선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별도의 사유를 밝히면 사내이사도 의장으로 선출할 수 있다. 대표이사에게 이사회 의장직을 맡긴 운용사들은 원활한 의사진행, 사업영역에 대한 CEO의 전문성과 경영능력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사회의 독립성 보다는 경영효율을 택한 셈이다.

이사회 독립성 보완을 위해서는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 사외이사'를 임명해야 한다. KB운용은 이석형 법무법인 산경 변호사가 해당 역할을 맡고 있다. 신한운용과 한화운용은 각각 이세훈 이룸투자자문 대표와 김양진 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이 선임 사외이사를 담당하고 있다. 한투운용은 현봉오 전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부이사장이 견제자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자산운용업계 양대 산맥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CEO에게 이사회 의장 겸직을 맡기지 않았다. 서봉균 대표가 사령탑을 맡고 있는 삼성운용은 3명의 사외이사 멤버(손성규‧구기성‧나성린) 중 한 명인 손성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최창훈‧이병성 투톱 체제를 꾸리고 있는 미래에셋운용은 제임스김(KIM JAMES WOO)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의장이 이사회를 이끌고 있다.

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은 리딩 업체 답게 이사회 운영에 있어서도 독립성에 방점을 뒀다"며 "반면 후발업체들은 시장 점유율 제고를 위해 이사회 독립성 보다는 경영 효율화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