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박종인 논설위원] 3월 첫 연휴가 끝난 뒤 편집국을 가장 바쁘게 한 기업은 다름 아닌 홈플러스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금요일(28일)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홈플러스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인데요. 연휴가 끝나면 채권단이 홈플러스에게 단기대출을 갚으라고 압박할 게 뻔하고, 이렇게 되면 단기적으로 부도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발 빠르게 대응해 성공한 것입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0시3분에 홈플러스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회생법원이 간단한 요식행위를 거쳐 오전 11시에 홈플러스 신청을 받아들여 반나절만에 회생개시를 승인하면서 '홈플러스의 위기'는 일단 해소됐습니다.
영업은 그대로 이어가면서 단기적인 자금난은 채권단의 압박이 아닌 법원의 차분한 스케줄에 의해 순차적으로 해소해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것인데요. 홈플러스와 그 최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연휴 3일간 긴박하게 움직여 묘수를 찾아낸 결과입니다.
모든 게 지지부진, 교착 상태에 빠져 꼼짝달싹 못하는 국내외 상황을 보면서 갑갑해 하던 차에 홈플러스의 이날 플레이는 모처럼 박수를 쳐주고 싶은 멋진 수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발 빠른 선방의 이면에 대략 세가지 팩트가 엿보입니다.
첫째는 '선제적 구조조정 기업회생'이란 프로세스입니다.
통상 기업이나 개인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 부도 위기에 내몰리면 선택하는 게 회생 신청인데요. 한마디로 지금 내 능력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으니 법원에 채무조정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회생신청을 접수한 법원은 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따져 회생가치를 평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산보다 회생이 우리 경제에 더 이익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은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는 파산이 불가피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시간입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고 채권단과의 채무조정, 출자전환과 매각 등의 절차를 거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쪼그라든 기업 가치는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하데요.
이런 점에서 이번 홈플러스의 '선제적 구조조정'이란 프로세스는 빛나는 묘수로 보입니다.
사실 이는 미국의 연방파산법 '챕터 11(Chapter 11)'을 원용한 것입니다. 법원도 언론에 이를 알렸는데요. "기업회생 접수 당일 연방파산법원이 회사가 정상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first day order'와 유사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first day order'는 국내서도 영업을 했던 미국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스(TGI Friday's, TGIF)에 적용된 프로세스인데요.
TGIF는 지난해 11월 2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부채를 해결하고 레스토랑을 장기적인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파산법 11장(챕터11)에 따른 자발적 청원서를 오늘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고 법원 감독 아래 영업을 지속하면서 채무를 재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당시 TGIF 최고경영자(CEO)는 "재정적 어려움의 주된 원인은 코로나19와 우리의 자본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앞으로 최적화된 기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TGIF나 홈플러스가 회생법원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할 수 있을지 여부는 물론 아직은 불투명합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다만 첫 단추는 그런대로 잘 꿴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는 포인트는 이번 판결을 주도한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입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해 세간에 이름을 알렸는데요.
사실 정준영 법원장은 '삼성'이나 '이재용' 보다는 기업 파산과 회생 전문가로 더 유명합니다.
1997년 서울중앙지법 근무 당시 한보그룹과 웅진홀딩스 등의 파산사건 주심을 맡아 처리했으며,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게 신속한 자금지원이 가능하도록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서울회생법원 초대 수석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법원 내에서 '파산 및 회생 전문가'로 손꼽힙니다.
이제 정준영 법원장의 기업회생 이력에 '11시간 선제적 구조조정 기업회생'이 한 줄 더 추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는 MBK파트너스입니다.
MBK는 최근 고려아연 인수합병(M&A) 사건과 관련해서 한동안 경제 언론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사모펀드인데요.
불과 3일, 그것도 연휴 기간에 자금난이 예약돼 있던 홈플러스를 '정상 영업 상황에서의 절도있는 구조조정'이란 묘수를 찾아내 금융계와 유통계가 깜짝 놀라게 한 능력이 돋보입니다.
탁월한 네트워크와 비상한 능력을 갖춘 고소득 인재들이 몰려 있는 곳이니 가능했겠지만 다른 한편 홈플러스를 잘못 인수했다 된통 혼나고 있다는 흑역사가 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또 하나 '음지에서 일하면서, 빛나는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 속성을 감안할 때 최근 MBK란 이름이 이토록 흔하게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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