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장에서 실근무시간을 문제 삼아 직원들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한 정황이 드러났다. D램 리더십이 흔들리자 일부 현장에서는 구성원들의 실근무시간을 전체 공개하며 연장·휴일근무를 사실상 강요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는 이달 1일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 '근무시간 강요 및 직장 내 괴롭힘 시정 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에는 최근 D램 제조팀의 일부 파트장이 구성원들의 필수 근무시간과 실근무시간, 달성률 등 세 가지 항목을 조사해 팀 메신저방에 공유하고, 필수 근무시간에 미달한 직원들에게 패널티 부과를 언급한 정황이 담겼다.
파트장들이 작성한 표를 보면 한 직원은 한 달 동안 207.48시간을 근무, 본인의 필수 근무시간(152시간)보다 약 55시간을 초과했다. 다른 직원들 중 기준을 채우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필수 근무시간은 개인별로 128시간에서 160시간까지 달랐지만 실근무시간과 달성률을 한데 묶어 공개한 방식으로 구성원 간 근무량 격차를 부각시켜 상대적 압박을 가했다는 게 내부 지적이다.
파트장들은 해당 표를 공개하며 "실근무시간이 저조한 경우 패밀리데이를 사용하지 마라", "근무시간을 평가에 반영한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 얘기하라"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는 이를 두고 "근로자의 자율적 근무환경을 저해할 뿐 아니라 회사가 지향하는 수평적 조직문화에도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사측에 요청했다.
삼성전자는 노조 측의 문제 제기 이후 해당 부서 직원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실근무시간을 공개하고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압박하는 행위 자체는 일부 인정했지만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사안이라고는 판단하지 않았다. 파트장들에게 구두로 주의 조치를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공식적인 징계나 별도 시정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초기업노조 관계자는 "파트장들의 실근무시간 공개와 압박 정황은 파악됐지만 개별 면담 과정에서 '압박은 있었으나 괴롭힘까지는 아니었다'는 답변이 많았다"며 "일부 구성원들은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고, 오히려 주변 동료들로부터 '왜 일을 키우느냐'는 식의 압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내부에는 여전히 문제 제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D램 사업 경쟁력 약화가 현장 내부의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 34%를 기록, 36%를 보인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줬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에 더해 주력인 범용 메모리 반도체마저 수요 둔화와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까지 맞물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1992년부터 33년간 유지하던 'D램 1위' 타이틀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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