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기영 기자] 상장사들이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면서 담보로 회사 주요 자산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담보는 회사가 소유한 부동산부터 심한 경우 현금 예금이 묶이는 경우도 있어 자칫 담보권이 실행되면 회사 존속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얼마 전까지 저금리에 증시가 호황일 때는 무이자 CB 발행이 흔했지만 최근 금리 상승에 자금시장 경색까지 겹치면서 상장사들이 '울며겨자먹기'로 담보까지 제공하며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에스디생명공학은 200억원 규모 3회차 CB를 발행하며 13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다.

CB란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채권이다. 채무자로부터 채무액을 상환받지 못하더라도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바로 현금화가 가능하기에 대부분 추가적인 담보나 보증 없이 발행된다. 상장이 유지되는 동안은 전환권이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채권자에게 담보부 CB는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것이다.

에스디생명공학이 CB에 담보를 잡은 것은 이미 보유 자산 상당 부분이 은행 차입금 담보로 제공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사는 3분기 말 연결기준 756억원 가치의 유형자산 중 663억원 상당(약 87%)을 은행 차입금 담보로 제공됐고, 정기예금 40억원도 담보로 제공했다. 담보가 설정될 경우 영업활동에 지장이 있는 재고자산이나 매출채권 등을 제외하면 회사 자산 대부분이 담보로 잡힌 셈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은 대부분 생산시설이란 점을 고려하면 담보권 실행 시 영업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현금을 담보로 CB를 발행한 곳도 있다. 협진은 지난 15일 110억원 규모 4회차 CB를 발행하면서 110억원 상당 정기예금을 담보로 제공했다.

조달액과 같은 액수의 현금을 담보로 제공했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현금유입이 사실상 없다. 다만 해당 CB가 전량 전환될 경우 부채가 자본으로 환입되며 담보가 해제되고 채무액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나마 회사 측에 다행인 점은 표면이자가 0%란 점이다. 만기상환(만기이자율 4%)만 아니라면 무이자로 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협진의 현금성자산은 현재 상황에 없어선 안 될 중요자산이다. 협진은 3분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현금+단기금융상품)을 215억원 가량 보유 중인데, 3분기말 영업손실만 77억원을 기록해 현금 유출이 지속해서 발생 중이다. 담보권 실행 시 유동성 위기가 우려된다.

에스디생명공학과 협진은 이번 담보부 CB 발행으로 주가 추이에 부담을 안게 됐다. 주가 부진으로 시장가가 전환가액을 밑돌아 채권자가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담보권 실행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모두 최근 기발행 CB에 대한 풋옵션이 행사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 압박이 한층 커진 것으로 예상된다.

보유 증권을 담보로 제공한 곳도 있다. 바이오로그디바이스는 65억원 규모 5회차 CB를 발행하면서 지난해 인수한 팹리스 반도체업체인 하이빅스의 주식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바이오메디팜 CB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 시티랩스는 보유한 퓨쳐스트림네트웍스 주식을 담보로 102억원 규모 8회차 CB를 발행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금 시장이 크게 위축된 여파"라며 "기발행 CB 풋옵션 행사와 신규 자금조달에 대한 어려움이 겹치며 담보CB 발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